지식인과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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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직업

대학 때 동창으로 오랫동안 소식이 궁금하던 R군을 일전 우연히 노상에서 만난 일이 있다. 전공이 심리학이었던 관계로 나와 비슷한 데가 있었고 가세(家勢) 역시 나나 마찬가지로 넉넉지 못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學)을 몹시 사랑하여 생계야 어찌 되었든 간에 학문으로 몸을 세워 일생을 학자로 보낼 것을 R군은 항상 염원하고 계획하고 하는 것이어서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R군은 나의 경외하는 학우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생계의 길을 찾아서 시골 어떤 학교에 취직하고 말았으나 R군은 가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대로 연구실에 주저앉아서 자기가 즐기는 학문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돌연 R군은 모 악기회사에 취직하였다는 소식을 나는 시골서 어떤 동무를 통해서 들었다. 심리학과 악기상(樂器商), 더구나 성미가 본래 음악과는 맞지 않아 평소에 이 방면과는 담을 쌓고 지내 오던 R군이다. 호구(糊口)52) 때문에 쪼들리다 못해서 학구(學究)를 던지고 여기에 들어갔을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허나 학자라고 해서 반드시 장사에 성공 못 한다는 법은 없지 않는가. 나는 되도록 R군에게 유리하게끔 내 멋대로 해석하고 그 후 소식을 기다리던 차에 일전에 노상에서 우연히 얼굴을 마주친 것이다. 5년만인가 6년만인가, 허나 어떻게 지내는가라는 나의 물음에 R군은 고개를 흔들|32|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성미에 맞지 않는 직업이었으나 그래도 밤에는 시간이 좀 있겠거니 해서 틈을 이용해서 공부를 좀 더 계속해 볼까 했더니 출장이니 사교니 해서 통이 시간을 낼 수가 없어 그래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고쳐먹고 몇 해 열심히 상무(商務)에만 전념하면 공부할 밑천 쯤은 잡을 수 있으려니 하고 한 5년 동안 애써 봤으나, 이것 역시 신통치 않아 인제는 이것저것 다 단념하고 얼마 전 회사를 나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듯한데 비단 R군 한 사람에 한할 것이 아니라 요즘 조선서 직업에 관계하고 있는 지식인의 거의 전부가 R군의 경우나 별반 다름없는 번민에 시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호구와 이념의 이율배반이라고나 할까. 어떻든 먹고 산다는 문제도 큰 일은 큰 일이려니와 이것도 여기에 못하지 않게 중대한 한 개의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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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가 직업의 중요한 요소임은 물론이나 그러나 생계가 직업의 유일의 요소는 아닐 것이다. 직업은 본래 그것을 의미할 독일어 Beruf53)가 Berufung 즉 신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이를테면 ‘소명(召命)’54)의 뜻을 가진 것이어서 그 자신에 있어 ‘천직(天職)’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천직이란 물을 것도 없이 특정의 개인이 거기에 종사할 가장 적절탁월한 천품(天稟)을 타고났고55) 또 그러하기 때문에 그 일에 종사함으로 말미암아 개인 자신에 있어서나 사태 자체에 있어서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직업을 의미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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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어떤 것이 민주주의냐고 명확한 정의를 먼저 요구한다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인 것쯤은 미리 알아 두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위하여서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마다 모두가 자기를 민주주의자로서 자처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자로서 인정해 줄 것을 강요하는 비민주주의자가 수두룩한 요즘의 조선이다. 히틀러라 하더라도 자기의 당명을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라고 내걸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한 사람의 ‘사회주의자’인 것처럼 가장한 일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과 대차(大差)254)가 없을 정도로 요즘의 조선에서는 친일주의자(親日主義者)도 민주주의요, 친파쇼분자255)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민주’ 두 자만은 반드시 떠메고 나서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러나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를 가지고 분석하며 종합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각자가 ‘인민’을 위해서 싸울 텐가, 인민의, 오직 인민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죽을 텐가, 어떤가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향하여 엄숙히 질문해 보는 편이 문제를 한결 더 간명직절(簡明直截)256)로 해결케 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명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몇 개가 있어 왔든, 지리적|220|으로 어떻게 그것이 분포되어 있든 이러한 제 점(諸点)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장소 위에서 이른바 ‘인민’이 누구를 의미하며 그 ‘인민’을 위해서 죽겠느냐 어떠냐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은 우리는 왜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일찍이 ‘인민’은 시민 즉 부르주아지의 대명사인 시절도 없지는 않았었다. 시민사회, 특히 신흥 시민사회에서의 시민이 그러했다. 시민은 거기서는 봉건 귀족에 대항하는 모든 반봉건 피압박대중의 영도자로서 다수자의 이익을 대표했었기 때문에 능히 ‘인민’일 수가 있었던 것이나, 그러나 지금은 이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는 인민은 지주는 더 말할 것 없고 시민자본가일 수는 도저히 없게 된 것이며 오직 노동자 농민 소시민 인텔리겐차를 포함한 근로대중만이 ‘인민’이다. 이것은 지금에 와서는 벌써 어쩔 수 없는 한 개의 상식이 된257)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 ‘인민’을 위해서 죽는 자만이 언제나 ‘민주’인 민주주의자일 바엔 여기 무슨 다른 어려운 정의가 필요할 것이며 두 개나 세 개의 민주주의가 운위될 것이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조선서는 여전히 지주의 집단도 당당히 민주당이오, 자본가가 민주주의 교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주나 자본가가 어째서 인민이며 지주나 자본가를 위하는 것이 어째서 ‘민주’라는 말이냐? 우리는 그 이유를 듣고 싶은 것이다.

모든 가짜는 결국은 가짜다. 가짜는 그러나 반드시 폭로되고야 말 것이다. 진짜만이 진|221|짜며 가짜는 가짜일밖에 더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의 당파성-테오리아와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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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당파성
-테오리아와 이즘-

철학은 우선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철학은 자기 자신만을 먹고 사는 그렇게 청백한 그렇게 초연한 학문이 아니라, 결국은 현실에 관한 하나의 사회적인 의식 즉 ‘이데올로기’의 하나다. 과거에 있어서 특정의 철학이 언제나 특정의 사회적 지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그가 지지되고 있는 그 사회적 지반의 존속과 강화를 위하여 없지 못할 현실적 봉사를 담당하여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실로 철학이 ‘이데올로기’인 이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조화와 중용’의 철학이 노예제도에 의하여 유지된 당시의 귀족적[?] ‘데모크라시’를 위하여 어떠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토마스’ 등으로써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이 봉건 체제의 존속 강화를 위하여 어떠한 역할을 감행하였으며 내지는 가장 엄밀하고도 엄숙한 체계라는 ‘칸트’의 철학이 결국은 프랑스 대혁명의 독일적 표현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설사 철학사(哲學史) 상(上)에서 일견(一見)8) 완전히 현실을 떠난 듯이 보이는 몇 개의 철학을 우리는 간혹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 역시 사정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그처럼 이 더러운 속세를 떠나|12| ‘관념’이라는 경기구(輕氣球)9)에서 안전한 오수(午睡)10)를 향락(享樂)할 수 있었음도 꼬리만은 언제나 가령 ‘데파트’11) 꼭대기나 이 같은 곳에 매여 놓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임에 불외(不外)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의 하부구조가 격동될 때마다 그들의 오수[철학]가 그처럼 당황히도 깨어질 리 없지 않은가. 오수를 향락할 수 있음도 자신의 사회적 지반의 건재(健在)가 빼지 못할 조건이 된다는 이 사실에 상도(想到)12)만 한다면 철학이 ‘이데올로기’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만을 소모할 ‘스콜라틱’한 문제밖에는 못 될 것이다. 철학은 ‘이데올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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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철학은 어떠한 성질의 ‘이데올로기’인가? 그것은 학인가 사상인가, ‘테오리아’인가 ‘이즘’13)인가? 철학은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이지만은 ‘테오리아’로서의 ‘이데올로기’인가 ‘이즘’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인가? 이것을 결정하지 않고는 철학의 본래적인 ‘폴레모스’14)[싸움]적 계기를 밝힐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 ‘폴레모스’적 계기가 왜 현대와 같은 시대에 와서 더 한층 양성적으로 문제되게끔 되는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선 우리의 소위 ‘테오리아’와 ‘이즘’이란 것은 대체 어떤 것이며 양자는 어떤 점에서 구별 줄 수 있는 것이며 양자의 관계는 어떤가를 설명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은 원래 ‘테오리아’의 산물이며 사상은 승의(勝義)적으로15) 일종의 ‘이즘’이다.16) 그러면 ‘테오리아’는 |13|어떤 것이며 ‘이즘’이란 어떤 것인가. 테오리17)[이론]의 원어인 희랍어 ‘테오리아’는 본래 ‘프락시스’[실천]와18) 대립되는 관(觀)[샤우엔]19)·관찰·관조·사변작용 및 이들 작용의 소산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 의미에서 냉정한, 따라서 정태적인 개념이나, ‘이즘’은 사상, 주의, 주장 등과 관련되는, 이 의미에서 보다 더 정열적인, 따라서 동태적인 개념이다.

‘테오리아’의 내용은 ‘학설’ ‘이론’임에 반하야20) ‘이즘’의 내용은 ‘주의(主義)’ ‘사상(思想)’이다. ‘테오리아’의 주체는 학자·이론가임에 반하여 ‘이즘’의 주체는 ‘이스트’[주의자(主義者)]21) 또는 ‘사상가’다. ‘이스트’에 있어서는 정열이 요구되나 학자에 있어서는 냉정이 요구된다. ‘테오리아’에 있어서는 ‘엄밀성’ ‘정확성’이 요구되나, ‘이즘’에 있어서는 오히려 ‘엄숙성’ ‘성실성’이 없지 못할 계기로서 요청된다. ‘테오리아’의 진리는 객관성임에 반하여 ‘이즘’의 진리는 주체성[주관성이 아님]이다. 이리하여 ‘테오리아’에 있어서는 인식이 결정적인 사명임에 반하야 ‘이즘’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행동성’이 가장 본래적인 사명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리아’의 가치는 ‘진위(眞僞)’22) 여하(如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나 ‘이즘’의 가치는 오히려 ‘선악(善惡)’23) 여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테오리아’에 있어서는 그것이 참인가 거짓24)인가가 먼저 문제임에 반하야 ‘이즘’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것이 민족계급을 위하여25) 좋은 사상이냐 나쁜 사상이냐가 먼저 문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즘’은 설사 그것이 틀린 주장의 ‘이즘’이더라도 일정한 사회층의 공명과 지지만 얻으면 버젓한 한 개의 ‘이즘’으로서 행세|14|할 수 있게 되는 것이어서 가령 소위 ‘파시즘’이라는 황당한 ‘이즘’의 예가 그것이다.

어쨌든26) ‘테오리아’에 있어서는 인식의 진위만이 문제되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학자의 비행(非行)은 특히 관대히 평가하려는 경향을 버릴 수 없음에 반하야 ‘이즘’에 있어서는 ‘선악’이라는 ‘모랄’27)이 무엇보다도 먼저 문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변절(變節)’이라는 한 개의 단순한 사사로운 정신적 변위를 ‘이스트’·사상가의 가장 치명적인 치욕처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테오리아’는 사물에 관한 단순한 ‘기술’이면 그만이나 ‘이즘’은 언제나 사람을 향한 하나의 ‘요구’·‘강요’로만 자신을 제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즘’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테오리아’로서의 그것보다 더 한층 노골적인 당파성을 띄게 되는 법이다.

대저(大抵)28) ‘이즘’은 본래부터 행동만을 목표 삼는 주의, 주장, 요구이기 때문이다. ‘테오리아’인들 당파성과 전연 무연(無緣)29)일 수는 없으나 [왜냐하면 뒤에서도 볼 것이지만 여하(如何)한 ‘테오리아’도 ‘이즘’화되려는 희구를 내포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이것이 직접 자신의 존망(存亡)30)에 관계될 것까지는 못 되는 것임에 반하야 ‘이즘’에 있어서는 당파성의 대소 강약이 ‘이즘’ 자체의 흥망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즘’의 ‘이즘’으로서의 세력과 인기(人氣)를 결정하는 자는 그의 당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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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리아’와 ‘이즘’은 이상과 같은 구별을 가짐과 동시에 그러나 일면(一面) 또한 밀접한 교차관계를 가진다. ‘테오리아’는 원래 되도록은 실제적인 것, 행동적인 것을 깨끗이 떠나서 냉정한 진리만을 탐구함에 의하여서만 자신의 순수성을 보지(保持)할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리성에 대한 객관적인 보증을 얻기 위하여서는 언제나 실천[프락시스]에까지 교부(交附)31)됨을 부절(不絶)히32) 그러나 은연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 ‘프락시스’에로의 ‘희구’가 곧 ‘테오리아’의 ‘이즘’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왜인가 하면 ‘이즘’이야말로 이 희구를 충족시킬 유일의 ‘행동’적인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다음 그러면 ‘이즘’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이즘’은 본래 정열과 행동성이 그의 유일의 자랑이어야만 될 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열의 합리성을 보증받기 위해서는 부절히 그러나 은연히 자신의 ‘테오리아’화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리하여 ‘테오리아’와 ‘이즘’은 상호가 이 같은 일종의 이행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니, 가령 한 개의 ‘테오리아’에 불과한 진화론이 ‘다윈이즘’이란 명목 하에 ‘이즘’화되어 종교 박멸, 기타의 현실적 행동성에 참여됨을 꾀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파시즘’이라는 한 개의 ‘이즘’이 자신의 ‘테오리아’적 요소의 결여를 부끄러이 생각하여 국내의 학자를 총동원하여서까지 ‘테오리아’와의 야합을 강요하고 있는 사실이라든지, 이 같은 사실은 모두 이러한 이행관계를 증시(證示)하는 일례(一例)에 불과하다.


≪사상과 현실≫ 구성체계

≪사상과 현실≫ 구성체계

박치우는 1946년 8월 중에 ≪사상과 현실≫을 탈고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을 것이다. 그가 발행인으로 있었던 ≪현대일보≫가 1946년 9월 7일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부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무기한 정간 당하고 미군정이 관계자들을 구속 수사하자 이를 피해 그는 잠적했다. 그가 피신하고 있는 사이에 백양당 출판사(대표 배정국)는 ≪사상과 현실≫을 1946년 11월 20일 세상에 내놓았다. ≪사상과 현실≫은 1946년 11월 20일 초판, 1947년 4월 10일 재판, 1948년에 3판이 나왔다.1)
동양철학자 정진석에 따르면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은 “해방 후 지식인 필독의 서(書)”였다.2) ≪사상과 현실≫은 호의적인 서평에서부터 반대 진영의 악평에 이르기까지 여러 서평이 신문과 잡지에 실릴 정도로 해방 정국 지식인들 사이에 필독서가 되었다. 한 예로, 문학자 김남천도 “이 한 권을 읽으면 조선이 어떻게 변혁되어야 할까가 충분히 해득될 것이다. 필자 자신도 많이 계몽되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다른 예로, 최상도가 “문화인에게 보내는 적은 공개장”으로서 이태준, 정지용, 임화, 김동석을 비판할 때 사용한 큰 제목도 “사상과 현실”(≪문화≫ 1호, 1947년 1월)일 정도였다. 이를 볼 때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이 지녔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과 현실≫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29편의 글을 싣고 있다. 제Ⅰ부는 일제 강점기에 썼던 글이고, 제Ⅱ부는 해방 정국 1946년 1월부터 8월까지 쓴 글들이며, 제Ⅲ부는 몇몇 출전을 확인하기 힘든 글을 제외하고는 ≪현대일보≫에 실었던 사설이나 촌평이다. ≪사상과 현실≫에 수록하면서 박치우가 처음 발표했을 때의 글 제목을 수정한 경우가 있다. 실린 글의 제목과 출전은 다음과 같다.

 

제Ⅰ부

<철학의 당파성 – 테오리아와 이즘>: 원래 <‘테오리아’와 ‘이슴’ – 이데오로기로서의 철학의 양면>으로 발표함, ≪동아일보≫, 1936년 1월 15일, 16일.

<시민적 자유주의>: 원래 <자유주의의 철학적 해명>으로 발표함, ≪조선일보≫, 1936년 1월 1일, 3일, 4일, 5일.

<지식인과 직업>: ≪인문평론≫ 2권 5호, 인문사. 1940년 5월 1일.

<고문화 재음미의 현대적 의의>6): 원래 <고문화 음미의 현대적 의의>로 발표함, ≪동아일보≫, 1937년 1월 1일, 4일.

<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조선일보≫, 1937년 4월 24일, 25일, 27일, 29일.

<현대철학과 ‘인간’ 문제 – 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7): ≪조선일보≫, 1935년 9월 3일, 4일, 6일, 8일, 10일, 11일.

<세대사관 비판>: 원래 <세대사관 비판 기일(其一)>로 발표함, ≪신흥≫ 제9호, 1937년 1월 18일.

 

제Ⅱ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 신생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민고(民鼓)≫ 창간호 제1권 제1호, 1946년 5월 10일.

<1대1과 형식논리>: ≪인문평론≫ 1권 2호, 1946년 7월 1일.

<민족과 문화>: ≪한성일보≫, 1946년 2월 26일, 3월 4일, 5일, 7일.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 ‘민족문화 건설 전국회의’ 보고 연설에서 <민족문화와 세계관> 발표, 1946년 4월 15일 ; 재수록 ≪신천지≫ 제1권 제5호, 1946년 6월.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 특별보고 강연, 1946년 2월 8일.

<연구와 발표의 자유>: ≪대조≫ 통권 1호 제1권, 1946년 1월.

<아메리카 문화>: ≪신천지≫ 제1권 제8호, 1946년 9월.

 

제Ⅲ부 새 나라 건설을 위하여

<상투>: ≪현대일보≫ 제123호, 1946년 7월 26일.

<토지와 포기>: ≪현대일보≫ 제68호, 1946년 6월 1일.

<‘서울’ 과신과 정당 편중>: 출처 미상

<새 자유의 성격>: 출처 미상.

<반민주주의자에게는 자유가 없다>: <반미론자가 없는 이유>, ≪현대일보≫ 제28호 사설, 1946년 4월 21일.

<학생은 시대에 앞서라>: ≪현대일보≫ 제109호 사설, 1946년 7월 12일.

<학자, 교육자의 성직문제>: <학자, 교육가를 우대하라>, ≪현대일보≫ 제106호 사설, 1946년 7월 9일.

<학원을 좀먹는 일제 잔재>: ≪현대일보≫ 제11호 사설, 1946년 4월 4일.

<사법계와 일제 잔독>: ≪현대일보≫ 제42호 사설, 1946년 5월 6일.

<공로에는 훈장을>: ≪현대일보≫ 제83호 사설, 1946년 6월 16일.

<국민의 대표>: ≪현대일보≫ 제20호, 1946년 4월 13일.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현대일보≫ 제58호 사설, 1946년 5월 22일.

<‘좌익’과 ‘우익’>: ≪현대일보≫ 제82호 사설, 1946년 6월 15일.

<조선에 반미론자가 없는 이유>: ≪현대일보≫ 제81호 사설, 1946년 6월 14일.

<여성해방과 여류정객>: ≪현대일보≫ 제76호 사설, 1946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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