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을 아시나요?

해방 공간, 베스트셀러

1946년 11월 20일 초판 발행된 «사상과 현실»은 박치우가 ‘국한문혼용체’로 쓴 저작입니다. 이 때문에, 문맹률이 인구의 70%를 차지했던 815해방 당시 대다수의 민초는 이 책을 읽기 어려웠습니다. 이번에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자어를 순 우리말로 고쳐 다시 출판하였습니다. 애독 바랍니다.

서점으로!저자 박치우

특징

 

한국 현대 인문학 고전‘ 작품 중의 백미!

한국 현대사와 한 몸을 이루는 한국현대 철학사상서

1946년 초반, 좌우 분열남북 분단으로 나아가는 원인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

해방 공간의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인문교양사상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공간까지 이어져 오는 반파시즘 철학사상

해방 공간에서 민주주의 개념과 민족민족문화 개념을 정립한 실천철학

지식인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강조한 실천철학서

감칠 맛 나는 언어적 표현과 깔끔한 논리성을 보여주는 글쓰기 교본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공간 1946년까지 주요 시대적 문제를 알려주는 사회평론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야 할 책, 강추합니다.

   이 작품의 가치는 여러 가지입니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희구하는 시민이라면 시간을 내서 읽어 보시면 해설자가 못 발견한 의미까지 찾을 수 있는 글입니다.

독서의 계절, 이 가을에 이 작품을 읽는 ‘모험’을 감행해 보시죠!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접선에서 글쓰기의 모험을 감행한다는 박치우의 말처럼(<서문> 참고) 여러분도 글읽기의 모험을 시도해 보시죠.

읽어 보시면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메세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5일간 판매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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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이 기회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포스팅 공유 부탁드립니다.

목차

총 29편의 박치우 글과 총 4편의 부록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을 읽는다면 ‘해방 공간’과 ‘한국 현대사’, 그리고 새롭게 태동하던 해방공간의 진보적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천적인 철학사상입니다.

편집자 서문

  • 편집자 서문
  • 일러두기

사상과 현실

  •  서(序)

제1부 (무제)

  • 철학의 당파성 -테오리아와 이즘-
  • 시민적 자유주의
  • 지식인과 직업
  • 고문화 재음미의 현대적 의의
  • 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 현대철학과 ‘인간’ 문제 -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
  • 세대사관 비판

제2부 (무제)

  •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신생 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 1대1과 형식논리
  • 민족과 문화
  •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
  •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 연구와 발표의 자유
  • 아메리카 문화

제3부 새 나라 건설을 위하여

박치우는 제3부에만 제목을 붙였다.

  • ▲ 상투
  • ▲ 토지와 포기(抱妓)
  • ▲ ‘서울’ 과신과 정당 편중
  • ▲ 새 자유의 성격
  • ▲ 반(反)민주주의자에게는 자유가 없다
  • ▲ 학생은 시대에 앞서라
  • ▲ 학자, 교육자의 성직 문제
  • ▲ 학원을 좀먹는 일제 잔재
  • ▲ 사법계와 일제 잔독
  • ▲ 공로에는 훈장을
  • ▲ 국민의 대표
  • ▲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 ▲‘좌익’과 ‘우익’
  • ▲ 조선에 반미론자가없는 이유
  • ▲ 여성 해방과 여류 정객

여기까지가 박치우가 썼던 원래의 «사상과 현실»

부록1 박치우의 삶과 죽음

  • 1. 박치우의 초상화
  • 2. 박치우와 그의 가족
  • 3. 경성제대 학창 시절
  • 4. 숭실전문학교 교수 시절 : 아카데믹 철학을 나오며
  • 5. 조선일보 기자 시절 : 지성과 파시즘 비판
  • 6. 해방 공간(1) : 탁치와 민족통일
  • 7. 해방 공간 (2) : 현대일보 주필 박치우
  • 8. 강동정치학원과 순교자적 죽음

부록2 ≪사상과 현실≫ 해설

  • 1. ≪사상과 현실≫의 역사적 의의
  • 2. 출판 직후의 서평들
  • 3. 출전과 구성체계

 

  • 4. 제1부 해설
  • 4.1 철학의 당파성 : 테오리아와 이즘
  • 4.2 시민적 자유주의
  • 4.3 지식인과 직업
  • 4.4 고문화 음미의 현대적 의의
  • 4.5 사교의 발호와 종교 상업주의
  • 4.6 현대철학과 인간 문제
  • 4.7 세대사관 비판

 

  • 5. 제2부와 제3부 해설
  • 5.1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 5.2 부르주아 민주주의 비판과 근로인민 민주주의론
  • 5.3 민족문화 건설론
  • 5.4 학자와 국가의 관계
  • 6. 해설을 마치면서

부록3 박치우 생애 연보

박치우 생애 연보는 저희 사이트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부록4 박치우 저술 연보

부록 4 수록

참고문헌

책의 말미에 참고문헌 수록

≪사상과 현실≫ 구성체계

박치우는 1946년 8월에 ≪사상과 현실≫을 탈고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을 것이다. 그가 발행인이었던 ≪현대일보≫가 1946년 9월 7일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부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무기한 정간 당하고 미군정이 관계자들을 구속 수사하자 이를 피해 그는 잠적했다. 그가 피신하고 있는 사이에 백양당 출판사(대표 배정국)는 ≪사상과 현실≫을 1946년 11월 20일 세상에 내놓았다. ≪사상과 현실≫은 1946년 11월 20일 초판, 1947년 4월 10일 재판, 1948년에 3판이 나왔다. 

동양철학자 정진석에 따르면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은 “해방 후 지식인 필독의 서(書)”였다. ≪사상과 현실≫은 호의적인 서평에서부터 반대 진영의 악평에 이르기까지 여러 서평이 신문과 잡지에 실릴 정도로 ≪사상과 현실≫은 해방 정국 지식인들 사이에 필독서가 되었다. 한 예로, 문학자 김남천도 “이 한 권을 읽으면 조선이 어떻게 변혁되어야 할까가 충분히 해득될 것이다. 필자 자신도 많이 계몽되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다른 예로, 최상도가 “문화인에게 보내는 적은 공개장”으로서 이태준, 정지용, 임화, 김동석을 비판할 때 사용한 큰 제목도 “사상과 현실”(≪문화≫ 1호, 1947년 1월)일 정도였다. 이를 볼 때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이 지녔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과 현실≫의 구성체계는 서문을 제외하고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2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제Ⅰ부는 일제 강점기에 썼던 글이고, 제Ⅱ부는 해방 정국 1946년 1월부터 8월까지 쓴 글들이며, 제Ⅲ부는 몇몇 출전을 확인하기 힘든 글을 제외하고는 ≪현대일보≫에 실었던 사설이나 촌평이다.

≪사상과 현실≫의 제1부

제1부는 일제 강점기에 쓴 글들 중에서 7편의 글을 선택해 실었다. 세 편의 서평 중에서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 제1부 글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한 자가 김남천이다. 김남천은 자신의 서평에서 이 7편의 글을 두고 “아카데믹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새 시대를 위한 준비 관념이 투철히 나타난 논구”라고 했다. 어떤 점이 아카데믹한 냄새를 풍기며 어떤 점이 새 시대를 위한 준비 관념이 투철히 나타난 논구일까?

박치우는 일제 강점기에 대학 교수 생활을 했고 대학원을 진학한 사람이어서 아카데미 학자의 길을 가고 있었던 점과 함께 기자 생활을 하고 사회평론가 활동을 한 저널리스트의 길도 걸었다. 이 두 길 중에서 김남천은 박치우의 제1부 글이 전자의 길에 가깝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런 취지에서 제1부의 글이 아카데믹한 냄새를 풍긴다고 보았으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새 시대를 위한 준비 관념이 투철히 나타난 논구”라고 한 점까지 새기면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박치우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고 숭실전문대학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썼던 글들에서 ‘철학의 성격 규정’을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면서 당대 일본인 철학교수들의 아카데미즘적 성격, 즉 철학을 위한 철학에 염증을 느끼고 철학적 사상가의 꿈을 꾸었다. 또 그가 시간, 공간, 실천, 역사 개념에 대한 정립에  큰 관심을 가진다고 1936년에 밝힌 바가 있듯이 그가 지향한 길은 철학적 사상가의 길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아카데믹 철학, 즉 ‘철학을 위한 철학’을 거부하고 현실 타개를 위한 철학사상의 필요성을 부르짖었고 이를 동무들과 함께 행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철학적 문제의 선택과 관련하여 1936년 1월에 쓴 <아카데믹 철학을 나오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여기서 하는 수 없이 현실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문제 중에 서로 특별히 우리를 향하야 해결을 강박하는 절박된 문제만을 추리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절박된 우리의 위기의 타개를 위하여” 철학을 “현실 타개의 없지 못할 무기”로서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변증법적 방법과 함께 실천, 시간, 공간,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카데믹 철학에서 빠져 나왔다.

이런 의미에서 김남천이 제1부의 글이 아카데믹한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은 강단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강단철학의 철학적 이론을 논의하고 식민지 조선의 청년 지식인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철학적 및 사상적 경향을 비판하고자 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치우가 제1부에서 다룬 글의 주제들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처한 현실적 위기의 타개를 위해 이를 사상적 측면에서 이론적으로 해명한 성격을 지닌다.

철학이 당파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근거를 해명하고(철학의 당파성-테오리아와 이즘-), 파시즘의 대두 앞에서 자유주의가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해명하며(시민적 자유주의), 식민지 지식인의 실업 문제와 관련지어 식민지 지식인의 어려운 형편을 밝히면서 지식인의 소명과 직업 생활의 불일치 문제를 해명하고 지식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하였으며(지식인과 직업),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회고주의와 선양주의가 조선 총독부의 황민화 문화정책과 동궤에 놓여 있음을 해명하고, 이를 통해 조선의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내선일체화를 비판하고자 하였으며(고문화 재음미의 현대적 의의), 백백교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1차 수사 결과를 발표(1937년 4월 13일)한 직후에 박치우는 청림교, 보천교, 백백교와 같은 사교가 번영한 데에는 숨어 있는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을 캐보려고 하였으며, 또 조선총독부의 사교 취체에 대한 방침을 문제 삼았고(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면서 순수 인간을 찾았던 백철과 같은 문학인,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던 박종홍과 같은 철학도를 겨냥하면서 몰역사적이고 몰사회적인 인간관을 견지하고 순수인간형을 쫒는 조선 지식인의 풍조, 인간관의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하였으며(현대철학과 ‘인간’ 문제-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 파시즘을 비판할 요량으로 세대사관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으로서 세대 이론의 범람을 파시즘 현상으로 보고 세대를 역사의 주체로 간주하는 생물학주의적 세대사관이 옳지 않다고 비판하였다(세대사관 비판).

이들 박치우의 글은 식민지 지식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호소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일본 철학사상계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차별성을 갖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어쩌면 그들에 대한 대결의식까지 내면에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믹적 냄새를 풍기는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작업은 해방 이후 새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철학사상적 거름이 되었으며, 제2부와 제3부의 담론을 위한 기초로서 제1부의 글을 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가졌던 그의 문제의식은 해방 공간에서 썼던 제2부와 제3부의 글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사상과 현실≫의 제2부

제2부는 1946년 1월부터 1946년 8월 사이에 썼던 글 중 거의 대부분을 담았다. 김남천이 “해방 후 신조선의 민주주의 철학적 해명과 문화 건설의 이념을 주로 취급하였고”라고 서평에서 밝혔듯이 제2부는 해방된 조선에 수립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철학적 해명을 시도했고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념으로서 민족문화 건설의 이념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이 두 가지 주제가 제2부의 중심적 논의를 차지한다. 이 두 주제는 해방 공간에서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중점적인 사상적 과제였다. 박치우는 철학적 사상가로서 이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두 과제와 관련된 글을 제2부의 첫 머리에 먼저 배치시켰다.

 전자, 즉 민주주의에 관한 철학적 해명과 관계된 글은 두 편인데,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신생 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여->와 <1대1과 형식논리>이다. 그는 철학적 사상가로서 파시즘의 전체주의 철학과 부르주아적(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론의 ‘논리’가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매우 치밀하게 파고 들어가 비판적 해명을 하였다. 이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벌써 준비해 두었던 내용이었다. 해방 후 내놓은 글은 좀더 세련되었을 뿐이다. 파시즘의 전체주의 철학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론의 논리가 갖는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해명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매우 충분하다. 또 그는 자신이 내세우는 ‘근로인 민주주의’, ‘근로인민민주주의’의 진보적 성격을 해명하려 노력했다. 1946년 2월 15일에 그가 “민주주의와 인민”(김계림이 편집한 <<민주주의 12강>>에 수록되어 있음)이라는 제목 아래 “근로인 민주주의”론을 제시하고 곧이어 발표한 민주주의에 관한 철학적 해명에서 “근로인민 민주주의”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박헌영이 1945년 <<조선공산당>> 8월 테제에서 당면 혁명 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라고 명시하였다가 1946년 4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발표에서 “인민민주주의” 단계로 수정하는 데에 박치우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케 한다.

 후자, 즉 민족문화 건설론과 관계된 글은 총 세 편인데, <민족과 문화>,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 <아메리카 문화>가 그것이다. 임화, 이원조 등 좌익 문인들은 민족문학론, 인민문학론을 주장하였는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임헌영은 박치우가 이에 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고 보고 있다. 박치우의 ‘민족’ 개념은 우익들이 내세운 종족으로서의 민족 개념을 비판하는 담론을 포함하고 있다. 이 점은 박치우가 일제 파시즘을 겪으면서 파시즘의 뿌리가 종족적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한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 지금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파시즘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박치우의 글을 필독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 점이 그의 글을 주목하게 만든다. 박치우는 신생 조선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민족문화공동체론을 제시했다.

그 외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험에 대한 비판과 순교자로서의 학자론은 제2부 뒤편에 배치시켰는데, 앞에서 밝혔던 민주주의론과 민족문화건설론에 입각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는 1946년 2월 8일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에서 특별보고 강연한 것이다. 이 글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이 글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 결과가 일어나기 전후 일어나기 시작했던 반탁 시위가 한반도 분단을 초래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잘 알려주고 있다. 특히 해방 후 한국형 파시즘의 기원을 이 글에서 잘 파헤쳐 놓았다. 박치우의 글을 통해 <<조선공산당>>이 반탁 시위에 대해서, 또 <모스크바삼상회의> 결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제2부의 더 자세한 특징에 대해서는 <부록 2>에 실린 <사상과 현실> 해제를 참고하기 바란다.

 

≪사상과 현실≫의 제3부

박치우 본인이 발행인으로 몸 담고 있었던 <<현대일보>>에 실었던 사설 및 기고문 중 일부분을 <<사상과 현실의>>의 제3부에 수록하였다.  이들 글은 제2부의 글과 마찬가지로 해방 공간에서 썼던 글이다. 다만 글의 종류가 달라서 따로 분류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친일 잔재와 봉건 잔재를 청산하고 토지 혁명을 통해 근로인민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소망하는 계몽적인 저널리즘적 글을 담았다. ≪현대일보≫ 발행의 목적이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신문을 보급하겠다는 것이었던 만큼 그 목적과 일치되는 성격의 글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실린 글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부록 2>에 실린 <<사상과 현실>> 해제를 참고하기 바란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정세는 그의 글에 나타난 소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의 글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친일파를 두둔했던 이승만과 극우 세력 및 중경 <임시정부>를 봉대하기 위해 반탁운동을 전개했던 김구와 임정 세력들이 국수주의에 기반하여 테러까지 동원하는 등 파시즘화해 가고 있었고, 반탁운동에 가세했던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졸지에 애국자로 둔갑하는 한편, 미군정은 친일 관료들과 친일 교육자들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지식인은 설 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박치우가 제3부에 실었던 글에서 언급했던 도상록 사건이 그 하나의 실례이다. 또 진정한 여성해방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익 여성정객까지 설치고 있었던 점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1946년 8월 무렵에 응답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 설문의 응답을 볼 때 그는 좌우합작에 의한 과도정부가 수립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여하튼 박치우는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조선과 해방 공간의 조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철학적 사상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에 관한 기록을 남겼으며 사회비평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당대 지향해야 할 이념을 정립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상과 현실≫은 역사적 기록물로서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숙고해야 할 문제와 거의 간격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재사유의 길을 촉구하고 있다.

≪사상과 현실≫의 판권

«사상과 현실»의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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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 지식인들 사이 최량의 베스트셀러

박치우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저작으로서 3판까지 발행될 정도로 해방 공간에서 지식인들 사이 최량의 베스트셀러였다. 우리는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이 해방 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김남천의 서평, 신남철의 서평, 박종홍의 서평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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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1월 20일 초판 발행되었다

≪사상과 현실> 초판은 그가 피신하던 중에 발행되었다. 박치우는 1946년 8월에 탈고하고 원고를 백양당 출판사에 넘겼을 것이다. 1946년 9월 6일 미군 헌병들이 현대일보사를 수색하고 박치우는 피신했다. 조선주둔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은 1946년 9월 7일자로 ‘미육군 태평양 총사령부’ 포고령 제2호에 따라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 이단하, 이강국 등에게 지명수배 체포령을 내렸고 이들과 관계되어 있다고 본 ≪조선인민보≫, ≪현대일보≫, ≪중앙신문≫에 무기 정간 처분을 내리고 이 세 신문 관계자를 체포하려 들었다. 체포되어 죽음에 이른 사람도 있지만 박치우는 다행스럽게도 도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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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의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박치우는 의 서문에서 자신의 글을 놓고 ‘나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일제 강점기에 전문대학 교수로서, 기자로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를 행한 학자로서 살았던 그의 삶의 기록임과 동시에, 해방을 맞이한 시점부터 1946년 8월까지 해방 공간에서 행한 그의 삶의 기록이다. 이 박치우 개인의 기록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역사적 현실이 녹아 들어가 있다. 이 시기는 일제 강점의 식민 유제와 친일 잔재가 고스란히 해방 공간으로 이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 대신에 미군정이 들어섰고 우익 세력과 친일파가 부활하던 때였으며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 국내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경합하였던 때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자신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와 함께 숨 쉬는 평론 및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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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의 지식인들의 베스트셀러에 그치지 않았다

4.19세대들도 이 책 ≪사상과 현실>을 탐독했다고 하며, 1980년대 대학가에도 ≪사상과 현실>의 복사본이 나돌았다. 오늘날 남북 평화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시점에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의 제 논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현대철학계에서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을 선취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이미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자유주의가 파시즘 앞에서 무기력했던 문제점을,  자유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형식논리적 특성에서부터 찾았고, 이 문제점을 해방공간에서도 제기하였다. 그는 파시즘도 잘못되었고 자유주의도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뛰어넘는 민주주의론을 주장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한 민족문화건설론은 민족국가건설의 기본 지침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파시즘의 종족적 민족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이런 그의 논책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당대의 서평
김남천, 신남철, 박종홍은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에 관한 서평을 1946년 출판 직후에 남겼습니다.

김남천

변혁하는 철학 – 박치우 저 ≪사상과 현실≫

≪독립신보≫, 1946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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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

1911년 3월 16일 ~ 1953년 8월 ? 평안남도 성천군 출생. 일제 강점기에 언론지상으로 박치우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 815 해방 후 1946년 2월 제1회 조선문학가대회가 열렸을 때 박치우의 특별보고에 대해서 이원조의 제안으로 슬로건을 채택할 당시 슬로건을 채택한 중심 인물이 김남천이다. 또 박치우가 <현대일보> 발행인 및 주필로서 활동할 당시 같은 건물 옆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월북 후에도 박치우와 함께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남철

신간평: 사상과 현실 – 보전되는 진공지대

≪서울신문≫, 1946.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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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1907∼1958. 서울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신남철은 박치우의 경성제대 철학과 2년 선배다. 신남철은 3회 졸업생, 박치우는 5회 졸업생이다. 박치우가 숭실전문대학 교수 생활 중 <동아일보>에 신년학술특집논문 모집에 응모할 때 신남철은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 중이었다. 이때 박치우의 글 제목은 ‘나의 인생관: 인간철학 서상'(1935. 1. 11.)이었다. 일제 강점기 사상적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해방 공간에서 <조소문화협회> 창립 당시 함께 활동했던 점이나 <제1회 조선문학가대회>에서 함께 특별보고를 한 점 등이 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도 함께 했다. 신남철이 백남운과 함께 <남조선신민당>에서 활동한 점과는 달리 박치우는 박헌영과 함께 <조선공산당> <남조선노동당>에서 활동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박치우가 <조선공산당>에 당적을 두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박헌영이 김일성과 비밀회동할 때마다 함께 동행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조선공산당>에 가입했을 것이다. 또 <남조선노동당>을 결성하기 직전에 3당합동 사무장을 맡은 점도 그가 <조선공산당>에 가입했을 것임을 뒷받침한다.

박종홍

붘 레뷰: 박치우 저, 사상과 현실

≪경향신문≫, 1946년 12월 12일

박종홍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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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1903년 7월 1일 ~ 1976년 3월 17일. 선과생으로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박치우와 함께 철학과 5회로 졸업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학교 다닐 때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졸업 후 박치우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섰던 반면에 박종홍은 하이데거 철학의 경향을 따른 차이점을 갖는다. 박치우는 자신의 최초의 철학적 논문인 <위기의 철학> 말미에서 볼세비즘과 파시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던지는데, 이 구절은 박종홍과 자신의 입각점의 차이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815 해방 후 박종홍은 <조선학술원>에 뒤늦게 참여했다. 이는 박치우가 만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기 전에 <조선학술원>의 멤버로 등록된 것과는 다른 차이점을 갖는다고 하겠다. 박종홍이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에 대한 서평을 쓴 이유가 개인적 관계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서로 상반된 길을 걷게 되지만 대학 재학시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박종홍은 대학 졸업 후 일찍 대학원에 진학한 반면에 박치우는 뒤늦게 1940년경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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