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사상과 현실≫ 서문

박치우, ≪사상과 현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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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가 직접 쓴 서문입니다.

아래 보이듯이 스마트폰에서 아래와 같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책이라고 합니다. 전자책 보는 뷰어 사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공지 사항에 올리겠습니다.

서(序)

처음 일곱 편은 8월 해방 이전 것이고 나머지는 이후 것이다. 그 중에서 권두의 ‘철학의 당파성’은 일찍이 ‘테오리아와 이즘’이라는 제하(題下)에 익명으로1) 발표되었던 것이고 맨 나중의 ‘새 나라 건설을 위하여’는 최근 신문사설 수필 기타로 여기저기 발표된 계몽적인 단문 중에서 추려 모은 것이다.

정작 책으로 꾸미려고 다시 한번 읽어 보니 전체를 통해서 불만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들 글들은 어찌되었든 ‘나의 기록’임에는 어김이 없어 저자로서는 버리기 어려운 그러한 구석 역시 한두 곳이 아니다. 그래서 불만은 하면서도 자구(字句)나 수정해 보는 정도로써 그대로 세상에 내어 놓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리고 가난하고 아직은 완전치는 못하나마 여기에는 ‘내 것’이 있다.

이름을 ‘사상과 현실’이라고 붙인 것은 무슨 심각한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저 사상이나 현실적인 것이나, 또는 사상과 현실의 관계의 문제에 있어 혹종의 구체적인 사례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으며 이런 방식으로 풀어 보려고 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음에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베르그송’이었다고 생각되지만은, 이백 페이지의 저서에서 읽은 보람이 있었던 것이 이십 페이지만 된다면 독자는 모름지기 저자에게 감사해서 마땅하다는 의미의 말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것을 읽은 뒤부터 나는 독자로서의 평소의 나의 교만을 깊이 뉘우친 일이 있거니와 |4|이제 나는 독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저자다. 졸저(拙著)를 세상에 내어 놓으려니 또다시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이 말이 가진 무서운 뜻에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 독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저자 자격에서 여기 나와 섰기 때문이다. 말해서 무엇 하랴. 독자여 관대하라.

지금까지의 조선의 현상(現狀)은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대로 ‘저널리즘’은 ‘저널리즘’대로 마치 두 사람의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너무나 몰교섭적인 벌어진 두 길을 걸어왔던 것만 같다. 하지만은 이래서 옳을까? 이래서도 좋을까? 두 개의 호(弧)는 기회를 다투어 서로가 되도록은 덮쳐야 하며 덮치는 가운데서 서로가 실상은 보다 풍성해지는 것이며 보다 믿음직한 성과가 기약될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저서에서 되도록은 이 양자의 괴리에서 오는 결함과 미흡의 보충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 본 것이다. 저자가 언제나 이 두 개 영역 사이에 놓여 있는 소속 미상의 진공지대나 혹은 양호(兩弧) 접촉(接觸)의 절선(切線)2)에서 자료와 대상을 구해 보려고 노력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확실히 일종 위험을 상반(相伴)3)하는 모험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위험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대로 포기되어도 좋은 그러한 사업은 아닐 것이다. 이 모험이 어느 정도로 성공하였는지 나는 모른다. 오직 미력을 돌봄이 없이 여기 그 동안에 얻은 약간의 기록을 피력하여서4) 대방(大方)5)의 비판을 받고자 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이기는 하나 졸고(拙稿)가 이처럼 책이라는 모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백양당주(白楊堂主) 인곡(仁谷)6) 형의 호의와 편달에서다. 깊은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1946년 8월

저자 씀

아래 각주는 해설자 홍영두가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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