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4

저술 연보

날짜 제목
1930. 3. <돌아가는 맹자(歸り行く孟子)>, 경성제국대학학우회 편, ≪청량≫ 제8호.
1934. 4. 1. <위기의 철학>. ≪철학≫ 1권 2호, 철학연구회.
1935. 1. 11. <나의 인생관: 인간철학 서상>(총 6회), ≪동아일보≫. 1935. 1. 11·12·15·16·17·18.
1935. 6. 12. <신시대의 전망(5) 인테리 문제: 불안의 정신과 ‘인테리’의 장래>(총 3회), ≪동아일보≫. 1935. 6. 12·13·14.
1935. 9. 3. <현대 철학과 ‘인간’ 문제 ― 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

(총 6회), ≪조선일보≫. 1935. 9. 3·4·6·8·10·11.

1935. 10. 2. <추등독서 ‘정독’과 ‘야독’>, ≪조선일보≫.
1935. 10. <한가한 되푸리>, ≪숭실활천≫ 제15권.
1935. 11. 3. <불안의 철학자 ‘하이덱겔’ 그 현대적 의의와 한계>(총 8회), ≪조선일보≫. 1935. 11. 3·5·6·7·8·9·10·12.
1936. 1. 1. <자유주의의 철학적 해명>

(총 4회), ≪조선일보≫. 1936. 1. 1·3·4·5.

1936. 1. <‘아카데믹’ 철학을 나오며: 철학의 현실에 대한 책임 분담의 구명>, ≪조광≫ 2권 1호년, 조선일보사출판부.
1936. 1. <불안의식의 인성론적 설명>, ≪사해공론≫ 제2권 제1호, 사해공론사.
1936. 1. 15. <‘테오리아’와 ‘이슴’: 이데오로기로서의 철학의 양면>

(총 2회)(노고수 필명 사용), ≪동아일보≫. 1936. 1. 15·16.

1936. 5. <그 아내 그 남편: 나는 내 남편의 어느 점이 좋은가(김종숙) 나는 내 안해의 어느 점이 좋은가(박치우)>, ≪여성≫ 1권 2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6. 5. 28. <국제작가대회의 교훈, 문화실천에 있어서의 선의지>(총 4회), ≪동아일보≫. 1936. 5. 28·29·31, 6. 2.
1936. 7. <내가 그때 만약 의사였으면>, ≪사해공론≫ 제2권 제7호 사해공론사.
1936. 9. 4. <나의 관심사: 두 편의 노작>, ≪조선일보≫.
1937. 1. <세대 비판의 완성으로>, ≪조광≫ 3권 1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7. 1. <세대 사관 비판(其一)>

, ≪신흥≫ 제9호.

1937. 1. 1·4. <고문화(古文化) 음미의 현대적 의의>

(총 2회), ≪조선일보≫.

1937. 2. <문인과 여성, 문인과 부부>(설문), ≪여성≫ 제2권 제2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7. 3. <독서설문>, ≪조광≫, 조선일보사출판부
1937. 4. 24. <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총 4회), ≪조선일보≫. 1937. 4. 24·25·27·29.

1937. 6. <사상과 육체>, ≪조광≫ 3권 6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8. 1. 1. <평론가와 작가의 일문일답: 박치우·이효석―지성옹호와 작가의 교양>, ≪조선일보≫.
1938. 1. <내 집의 화분: ‘탄일화’>, ≪조광≫ 제4권 제1호
1938. 5. 10. <현대학생풍기론―그 사회적 근거와 변천상>(총 5회), ≪조선일보≫. 1938. 5. 10·11·12·13·14.
1938. 6. 14. <고전부흥의 이론과 실제: 고전의 성격인 규범성―참된 전승과 개성의 창조력> ≪조선일보≫.
1938. 7. <문화조선에 기(寄)하는 서(書)―현대조선학생론>, ≪사해공론≫ 4권 7호년, 사해공론사.
1938. 7. <좌담회: 조선영화의 신출발>(출석자: 안석영, 방한준, 임화, 이창용, 서광로, 박치우, 이병일, 이금용, 본사측 기자), ≪조광≫ 8권 1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8. 7. 23. <경량특급: 산으로 바다로. 해반 제3참 후포>(총 4회) (1) 오백호 미만 어촌에 사공이 8백여 명 호미를 이즌 “후리포”는 바다만 밋고 산다 (2) “고기떼가 오나 보자” “관어대(觀漁臺)” 설치코 감시―가장을 바다로 보내고 잠 못 자는 가족의 정경 (3) 포구에서 포구로! 후조(候鳥)와 가튼 “해녀선(海女船)”―해수(海獸)의 비명(悲鳴)인 듯 요기(妖氣)를 띈 휘파람소리 구슬퍼 (4) 대부망(大敷網) “후릿배”의 장쾌(壯快)한 양상출진(洋上出陣)―오늘 수획은 무엔고? 굼굼한 이곳 어촌의 비밀, ≪조선일보≫. 1938. 7. 23·24·26·27.
1938. 11. <예지로서의 지성>, ≪비판≫ 제6권 제11호.
1939. 2. 22. <전체주의의 제상(諸相): 전체주의의 철학적 해명―‘이즘’에서 ‘학’으로의 수립과정>, ≪조선일보≫. 1939. 2. 22·23·24.
1939. 4. 1. <졸업하는 여학생에게 ― 누이동생 순이에게 부치는 편지>, ≪여성≫ 제4권 제4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9. 4. 14. <종교와 투자>, ≪조선일보≫.
1939. 5. 6. <구라파 문화는 어디로?: 형식논리의 패퇴―분유논리의 부활?>(총 2회), ≪조선일보≫. 1939. 5. 6·7.
1939. 8. 1. <하기방학 이용법, 남녀학생 풍기문제>(설문), ≪학우구락부≫ 제1권 제2호.
1939. 11. <교양의 현대적 의미: 불혹의 정신과 세계관>, ≪인문평론≫ 1권 2호, 인문사.
1939. 11. <좌담회: 여성과 독서>, ≪여성≫ 제4권 제11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39. 11. 8. <한해지(旱害地) 실정과 그 구제책>(총 4회) (1) 인사(人事)는 진(盡)·대천명(待天命)―재지(災地) 농민들의 불사신적 노력!(2) 조직을 어든 정신력―농토를 수호하고 잇는 굳센 의기 (3) 방재(防災)는 인위로 가능―농경제도의 근본적 재검토 필요 (4) 무엇보담 과동책(過冬策)―학동퇴학을 기어코 붓드러라, ≪조선일보≫. 1939. 11. 8·9·10·11.
1939. 12. 15. <학계 1년 보고서. 조선학의 독무대>(총 2회). ≪조선일보≫. 1939. 12. 15·16.
1939. 12. <한해(旱害)칠도(七道)의 현지보고>, ≪농업조선≫ 제2권 제12호
1940. 1. <플라톤>, 방응모 ≪세계 명인전≫ 제3권, 조광사.
1940. 1. 4. <자력 갱생의 ‘호(好)표본’: 소학생 일요노동대―동병상련의 ‘명콤비’ 애꾸눈이와 꼽추>, ≪조선일보≫.
1940. 3. 15. <문화문제 종횡관: 평단삼인 정담회―서인식 박치우 김오성>(총 3회) (상) 문화성장의 토양, (중) 민족정서와 전통, (하) 문화수입의 태도, ≪조선일보≫. 1940. 3. 15·16·19.
1940. 4. <교양의 현대적 의미: 평론편> ≪조선작품연감≫ 15권, 인문사.
1940. 5. <지식인과 직업>

, ≪인문평론≫ 2권 5호년, 인문사.

1940. 7. <동아협동체론의 일성찰>, ≪인문평론≫ 2권 7호년, 인문사.
1940. 8. 10. <수상: 중얼기>, ≪조선일보≫.
1940. 11. <과학에의 돌격!―교육조선의 신 코쓰>(좌담회: 고공교수 안동혁, 성대병원 위생학교실 최희영, 성대병원 송정외과 문인주, 연전교수 한인석, 문예평론가 서인식, 사회평론가 박치우, 본사측 이갑섭)(좌담회 소주제: (1) 과학문명달성의 필요, (2) 향학의 실정과 문화과학에의 편중문제, (3) 시국과 과학교육, (4)과학지식의 대중화, (5)기술의 대중화문제, (6)조선에 특수한 연구제목, (7)연구소 설치의 급무), ≪조광≫ 6권 11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41. 1. <전체주의의 논리적 기초>, ≪조광≫ 7권 1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41. 4. <도시와 농촌의 문화교류: 농촌문화문제특집>, ≪조광≫ 제7권 4호, 조선일보사출판부.
1941. 6. <내가 밤을 새고 읽은 책>, ≪춘추≫ 제2권 제5호, 조선춘추사.
1942. 1. <좌담회: 조선영화의 신출발>, ≪조광≫ 제8권 제1호.
1943. 1. 25. <アリストテレスの散文論(아리스토텔레스의 산문론)> ≪학총≫ 제1집 동도서적주식회사.
1943. 2. <내가 꿈꾸는 신무기>, ≪조광≫ 제9권 제2호.
1946. 1. 7. <탁치와 민족통일―혁명세력은 하나가 되라>(총 2회), ≪중앙신문』 67―68호. 1946. 1. 7·8.
1946. 1. <연구와 발표의 자유>

, ≪대조≫ 제1권 1호년, 대조사.

1946. 2. 8.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 특별보고 강연).
≪사상과 현실≫과 ≪건설기의 조선문학≫(1946년 6월 발행)에 재수록.

1946. 2. 26. <민족과 문화>

(총 4회), ≪한성일보≫. 1946. 2. 26, 3. 4·5·7.

1946. 3. 1·3. <3.1운동의 역사적 성격>, ≪조선인민보≫.
1946. 3. 25. <본보의 사명(1)―자유 조선의 소리>, ≪현대일보≫ 제1호 사설.
≪현대일보≫ 제1호 제2호 제3호 사설을 쓴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위상복은 박치우가 썼을 것이라 확신한다. 위상복의 견해에 따라 연보에 넣었다.
1946. 3. 26. <세계민주주의의 전령―본보의 사명(2)>, ≪현대일보≫ 제2호 사설.
1946. 3. 27. <새 나라 건설의 거울―본보의 사명(3)>, ≪현대일보≫ 제3호 사설.
1946. 4. 4. <학원을 좀먹는 일제 잔재>

: ≪현대일보≫ 제11호 사설.

1946. 4. 13. <국민의 대표>

: ≪현대일보≫ 제20호 사설.

1946. 4. 15. <민족문화와 세계관>

(민족문화 건설 전국회의 보고연설), ≪신천지≫ 제1권 제5호 수록.
이 보고연설은 ≪신천지≫ 제1권 제5호(1946. 6.)에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고 ≪사상과 현실≫에도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이라는 제목으로 재수록됨.

1946. 4. 19. <문화공동체와 민족의 성립>

, ≪중외신보≫.

1946. 4. 21. <반민주주의에게는 자유가 없다>

, ≪현대일보≫ 제28호 사설.
≪사상과 현실≫에 <반민주주의자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제목으로 재수록함.

1946. 5.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 신생 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야>

, ≪민고≫ 창간호 1권 1호.

1946. 5. 6. <사법계와 일제 잔독>

, ≪현대일보≫ 제42호 사설.

1946. 5. 22.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

, ≪현대일보≫ 제58호 사설.

1946. 6. <건국동원과 지식계급(좌담회)>, ≪대조≫ 1권 2호, 대조사.
1946. 6.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

, ≪신천지≫ 제1권 제5호, 서울신문사출판국.
1946년 4월 15일 <민족문화와 세계관>이라는 제목으로 <민족문화 건설 전국회의>에서 보고연설한 것임.

1946. 6.  <민주의원에>, ≪민성≫ 제2권 제7호, 고려문화사.(5월 11일 작성)
1946. 6. 1. <토지와 포기>

, ≪현대일보≫ 제68호.

1946. 6. 9. <여성해방과 여류정객>

, ≪현대일보≫ 제76호 사설.

1946. 6. 14. <반미론자가 없는 이유>

, ≪현대일보≫ 제81호 사설.
≪사상과 현실≫에 <조선에 반미론자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재수록됨.

1946. 6. 15. <‘좌익’과 ‘우익’>

, ≪현대일보≫ 제82호 사설.

1946. 6. 16. <공로에는 훈장을>

, ≪현대일보≫ 제83호 사설.

1946. 6. 27. <‘큰 코 다친다’>, ≪현대일보≫ 제94호.
1946. 7. <1대1과 형식논리>

, ≪인민평론≫ 제1권 제2호.

1946. 7. <좌담회: 건국동원과 지식계급>(김기림, 박치우, 백철, 정근양), ≪대조≫ 제1권 제2호, 대조사.
1946. 7. 9. <학자, 교육가를 우대하라>

, ≪현대일보≫ 제106호 사설.
≪사상과 현실≫에는 <학자, 교육자의 성직문제>라는 제목으로 재수록됨.

1946. 7. 12. <학생은 시대에 앞서라>

, ≪현대일보≫ 제109호 사설.

1946. 7. 26. <상투>

, ≪현대일보≫ 제123호.

1946. 8. <사회 시사평론: 자유 홍수 미신>, ≪협동≫ 통권 제1호, 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8. 25. <민주주의의 철학적 해명>, 조선학술원 엮음, ≪학술―해방기념논문집≫ 제1집 창간호.
1946. 9. 3. <민주세력의 결집을 위하여(1)―지도자의 공복의식>, ≪현대일보≫ 제162호.
1946. 9. <조윤제·박치우 대담: 종합대학안 시비>, ≪민성≫ 제2권 10호, 고려문화사.
1946. 9. <제씨(諸氏): 국립서울대학안과 나의 견해>, ≪민성≫ 제2권 제10호, 고려문화사.
1946. 9. <임시정부의 성격은?>(설문 1. 국내정세로 보아 수립되야 할 정부의 성격 2. 국제정세로 보아 수립되고야 말 정부의 성격 3. 정부의 인원구성에 대한 귀하의 사견: 김오성 박치우 서강백 이북만 윤세중 한일대) ≪신세대≫ 제1권 제4호.
1946. 9. <아메리카의 문화>

, ≪신천지≫ 제1권 제8호, 서울신문사출판국.

1946. 11. 15. <민주주의와 인민>, 김계림 엮음, ≪민주주의 12강≫, 문우인서관. (1946년 2월 작성)
이 글은 앞서 ≪학술―해방기념논문집≫(조선학술원 엮음, 제1집 창간호, 1946. 8. 25.)에 실은 <민주주의의 철학적 해명>과 제목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한 글이다.
1946. 11. 20. ≪사상과 현실≫

, 백양당.(재판 47년 4월 10일 발행).
서평: 김남천, <변혁하는 철학, 박치우 저 ≪사상과 현실≫>, ≪독립신보≫ 제199호(1946. 12. 10) ; 박종홍, <붘 레뷰: 朴致祐 저, 사상과 현실>, ≪경향신문≫(1946. 12. 12) ; 신남철, <신간평 : 사상과 현실–보전되는 진공지대>, ≪서울신문≫(1946. 12. 17) ; 정진석, <서평: 박치우 저 ≪사상과 현실≫>(≪문학평론≫ 통권 제3호, 문학평론사, 1947. 4.).

1947. 2. <문학자의 정치관여>, ≪국학≫ 제2호.
≪사상과 현실≫ 원문 157쪽에 있는 “문학자가 제작은 …… 의무인 것이다” 한 단락을 인용한 것이다.
1947. 10.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관>, ≪신인문학≫ 1권 1호.
이 글은 박치우가 1946년 7월 20일부터 1주일 간 행한 ‘조선문학신인회’의 신인문학강좌의 내용을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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