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사상과 현실>
읽기 쉽게 순 우리말로 재편집하고, 매끄럽지 않은 표현을 다듬되 원문을 각주에 표시하였으며, 4 개의 부록을 통해 충실한 해설을 가해 재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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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의 ≪사상과 현실≫ 맛보기

시민적 자유주의

개념의 참된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이 개념이 문자로서 가질 바 자의(字義)가 아니라, 문자가 그를 향하여 지향하며 개념이 그 위에서 살고 있는 그의 ‘현실’일 것이다. 자형(字形)과 발음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한 개념의 내용이 때로는 당초와는 전연 판이(判異)한 반대물에까지 자신을 전신(轉身)하는 예가 적지 않음도 이 때문이다. 자유주의라는 한 개의 개념도 또한 이에 대한 예외일 수가 없다. 그저 자의(字義)만에 의거하여 무책임하게 ‘자유주의란 자유를 주장하는 주의(主義)다’하고 간단히 처단(處斷)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하 자유주의를 해명함에 있어 자의만에 의거한 공허한 개념 규정을 피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이것을 언제나 시민사회와의 관련에서 보아 가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정신은 그의 탄생부터가 벌써 완전히 시민적인 하나의 주의(主義)였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과거 및38) 현재의 자유주의의 해명에 한해서만 적용될 말이고 결코 미래에 관한 말은 아니다. 사실 장차 시민사회와는 하등의 의속(依屬)관계도 갖지 않은 그러한 전연 새로운 ‘비(非)시민적’인 자유주의가 출현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 것이냐. 개념이란 원래 그를 지지하고 있던 그 현실의 변전(變轉)을 따라 필연적으로 내용에 변화를 |20|초래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가령 여기에 시민사회라는 이 현실의 영구성(永久性)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어 과거 및39) 현재의 자유주의와는 질적으로 구별될 전연 새로운 자유주의의 출현을 미래에 있어 기대하고 있다면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단순한 헛된 망상이라고 간단히 처단해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세계사는 다름 아닌 자유의 실현과정이라는 ‘헤겔’의 말이 실로 허언(虛言)이 아니라면 시민사회는 과연 그의 최종형태일 수가 있는가? 그가 보여준 자유란 과연 완성된 형태의 자유일 수 있는가? 있었던가?

≪사상과 현실≫ 제1부 가운데에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신생 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이번 대전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의 결전이었고 결과로 본다면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였다고 한다. 이것은 전승국인 연합국 측의 주장인 동시에 사실 또 개전 벽두부터119) 연합국 측은 파시즘의 침략과 협위에 대한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것을 유일 공통된 구호로 내걸고 국민을 끌고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귀에 새로운 것은 지금은 패전국인 소위 추축국(樞軸國) 측의 구호는 이것과는 다소 달라서 파시즘 대 민주주의의 결전이라고는 하지 않고 전체주의(全體主義) 대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결전이라고 부르짖어 왔던 것이다. 이 사실은 저으기120) 흥미 있는 일이어서 아무리 추축국이라 하더라도 투쟁의 상대방을 민주주의이라고 규정하는 데는 일치하면서도 자기를 파시즘이라고 자기 손으로 이렇게 규정해 버리고는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파시즘이라면 발상지인 이탈리아의 경우라면 하는 수 없지만은 파시즘이라는 것이 본래부터가 국수주의와 긴밀히 손을 잡고 일어난 것인 만큼 첫째 독일이나 일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파시즘을 외국인 이탈리아 수입품 모조물로 자처하기에는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대단히 계면쩍은 점이 없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강권과 강압을 위주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받아 온 자국민의 좋|98|지 못한 인상을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실지에 있어서는 ‘무솔리니’보다도 더 한층 선수인 ‘히틀러’ 자신도 자기들의 파시즘은 파시즘이 아니라 ‘국민사회주의’, 바꿔 말하면 일종의 ‘사회주의’라고 이렇게 주장하여 가면서 국민을 이끌고 나갔던 것이며 일본 역시 자기 손으로 자기를 파시스트 국가라고 규정한 일은 한 번도 없는 것이며 일본은 이탈리아나 독일과는 전연 다른 독특한 국체를 가진 나라로 파시즘도 나치즘도 일본에는 맞지 않고 그게 무슨 주의라고 붙여야만 된다면 그것은 ‘일본주의’라고나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이렇게들 떠들어 왔던 것이다.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주의’ 운운을 내세운다는 것은 양화 제조업자가 ‘양화주의(洋靴主義)’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무내용 무의미한 주장인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나 어쨌든 이렇게 파시즘 대(對) 민주주의라는 말은 되도록 피하고 그 대신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술어를 내걸고 그들은 이번 전쟁을 시작하였고 또 이 구호 밑에서 국민을 이끌고 나아갔던 것이다.

≪사상과 현실≫ 제2부 가운데에서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나치스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의 타도만으로 세계사에 있어서의 파시즘의 종언을 기대함과 같음은 너무나 어리석은 낙천주의다. 파시즘이란 한 번은 있었으나 거꾸러지면 다시는 있을 수 없을 그러한 박물학적 진열물은 아니다. 파시즘은 민족국가가 존속되는 한 언제나 열병(熱病)적인 공세를 노리고 있는 계급사회의 ‘바실루스’182)다. 이지(理知)의 높은 근대화와 그리고 보다 더욱이는 감정의 철저한 민주주의적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민족적인 중대한 문제와 마주치는 경우에 파시즘의 그럴 법한 가지가지의 유혹에서 손쉽게 벗어나기란 결단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파시스트들은 언제나 반드시 애국자라는 미명하에서 등장한다. 그리고서는 자기를 따르지 않는 자는 덮어놓고 매국노로 몰아댄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강도 히틀러가 애국자인가? 약탈자 동조(東條)183)가 애국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 때는 애국자로 행세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 있는 것일까. 민중 역시 한 때는 그들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비밀의 원천은 감정에 있는 것이다. 신비주의적 유혹에 대해서 가장 약한 부분인 감정! 이성이|151| 아니라 감정!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항상 노리고 있는 가장 믿음직한 돌격로는 대개는 언제나 이 같은 거의 본능적인 감정 이를테면 ‘기분’이다.

파시즘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전매품은 아니다. ‘무솔리니’의 공언을 기다릴 것 없이 파시즘은 수입품도 수출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독일에도, 독일에만 아니라 스페인에도 스페인만이 아니라 또 다른 여러 가지 나라에서 파시즘은 번식하였으며 또 번식할 수 있는 것이다. 도처에 ‘국산 파시스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전예고나 선전포고가 아직은 없다고 해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앉은 자가 있다면 이들은 반드시 이탈리아의 사회당이나 독일의 얼빠진 자유주의자들처럼 무자비한 일격(一擊)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선제공격(先制攻擊), 전격작전(電擊作戰)은 모든 파시스트의 공통된 전통적인 전투양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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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파시즘의 개념 규정에 있어 언제나 이것을 독점금융자본 시대와의 관련에서만 규정하려는 공식주의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맥도 못 쓰면서 이들보다는 훨씬 후진국일 터인 스페인에서는 도리어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이 성공되지 않았는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기에 독점금융 운운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정의를 줄 필요가 있는 것이어서 가령 계급 대신에 민족의 이름으로써 비상사태를 처결(處決)하려는 반(反)역사적인 폭력독재, 이렇게나 규정하는 편이 훨씬 더 타당할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떻든 계급적 양심에|152| 호소하는 대신에, 아니 때로는 도리어 계급의 대립을 말살, 엄폐하는 수단의 하나로서 계급 대신에 민족을 내걸고 민족감정에 호소함으로써 폭력에 의한 비상사태의 반역사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파시즘의 공통된 특징이다. 반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반동이며 반동임으로 해서 폭력에 의거할 밖에 도리가 없으며 폭력에 의유(依唯)한 제압(制壓)의 지속을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전제만이 유일무이의 길일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것은 누가 보든지 논리적으로는 엄연한 한 개의 무리가 아니면 아니 된다. 허나 논리적으로 무리이든 말든 이 같은 무리가 현실적으로 버젓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비밀은 어디 있는 것일까. 이 같은 무리가 가능케 되는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사상적으로 말한다면 한 말로 해서 그것은 이른바 “비합리성의 원리”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파시즘으로 하여금 한 개의 현실력(現實力)으로서 성립될 수 있게 하는 철학적 근거는 “비합리성의 원리”라는 말이다. 하다면 비합리성의 원리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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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논리만이 논리가 아니다. 비합리적인 논리도 논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184)의 “역리의 논리”, ‘셰스토프’185)의 “허망의 논리”와 같은 것은 어느 의미에서 본다면 합리적인 논리에 대한 한 개의 반발로서 이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의 성립에 관한 시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 ‘토테미즘’의 사회와 같은 미개사|153|회에서는 이미 ‘레비 브륄’186)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전(前)논리적인 논리, 일종 비(非)합리적인 논리가 지배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구태여 미개사회에까지 갈 것 없이 현존 고급종교까지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경우에서도 사정은 적어도 매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기서는 2 2187)는 4가 아니라 진실로 2 2는 5도 되며 1도 되는 일쯤은 보통이기 때문이다. 2 2가 5되며 1도 될 수 있는 한에서뿐 종교는 비로소 성립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른바 초논리적인 논리가 이것이다. 신비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어서 파시즘이 등을 대고 있는 논리 역시 언제나 일종의 이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라는 것을 우리는 명기(銘記)할 필요가 있다. ‘피’나 ‘흙’의 논리야말로 그 가장 현저한 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동포라면 반갑고 고국이라면 그리운가. 동포이기 때문에 반갑고 고국이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그 뿐이다. 이 이상 설명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이것들은 확실히 보통논리, 합리적인 논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인 요소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치스 철학이 언제나 ‘피’와 ‘흙’의 원리를 내세우게 되는 것은 이렇게 보아 오면 결코 이유 없는 일은 아니다. 이지(理知)는 여기서는 절대로 금물이다. 단도직입으로 감정에, 민족감정에 호소하고 마는 것이 언제나 그들의 상투수단이다. 모든 종류의 국수주의가 자칫하면 파시즘으로 넘어가기 쉬운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다. 내 것이면 덮어놓고 사랑하며 제일(第一)인 국수주의는 이성의 개재를 불허(不許)하는 일종의 감상주의임에 틀림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피’와 ‘흙’을 돌보지 않는 여하(如何)한|154| 국수주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수주의로부터 발족하지 않는 파시즘이라곤 없는 것이다. 국수주의가 권력에의 의욕과 결부되는 순간 그것은 횡포무쌍한 파시즘으로 전화되기가 십중팔구인 것이다. 덮어놓고 내 것이 제일, 우리 민족이, 우리 문화가 제일이라는 신비주의적 국수주의 사상이 가령 제국주의와 같은 것과 손을 마주 잡게만 된다면 그것은 내(內)로는 테러와 쿠데타를 일으키고야 말 것이며 외(外)로는 만주를, 시베리아를! 이렇게 조선판 천손(天孫) 사상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재현시키고야 말게 될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하다면 경우에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더 말할 것 없이 모든 비(非)독일적인 문화를 구축(驅逐)하고 그 자리에 순수 순결한 독일적인 민족문화를 육성한다면 나치 독일의 문화정책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느냐가 무엇보다도 증거다. 문제는 오직 조선에도 과연 이 같은 파시즘의 위험이 있느냐 어떠냐에 달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상과 현실≫ 제2부 가운데에서

고문화 재음미의 현대적 의의

위대한 과거를 가졌다는 것은, 탁월한 고문화를 가졌다는 것은, 민족으로서의 자랑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자랑은 반드시 찬탄(讚嘆)만을 가져옴은 아니라는 것을. 치욕도 가졌을 수 있다는 것을. 불초의 자식, 탕자의 경우를 상념해 보라.

오직 조선(祖先)에 못지않을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자만이, 불연(不然)이면, 조선의 유지(遺志)와 유산을 살려 이것을 떳떳이 활용할 줄 아는 자만이, 그들의 조선(祖先)을, 과거를, 고문화를 비로소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양자 중에 우리는 과연 그 어느 것에 속하고 있는 것일까? 진실로 우리는 어느 것일 수가 있는가? 아해다운59) 긍지(衿持)는 모름지기 버릴 때다. 과거에 대한 자랑보다도 미래를 향한 창조적인 결의를, 감정보다도 이지를, ‘센티멘트60)’보다도 ‘라티오’61)를 한 걸음 먼저 갖추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진실로 이것은 고문화(古文化)의 재음미(再吟味), 문화유산의 검택(檢擇)에 있어 언제나 먼저 냉정히 반성해야만 하는 가장 요긴한 문제인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반성이 앞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 소위 ‘재음미’와 ‘검택’이란 자(者)에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서는 단순한 회고적인 골동취미(骨董趣味)나 그렇지 않으면 소박한 선양주의(宣揚主義)적인 상고(尙古) 운동·복고 운동 이외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선양을 위한 파렴치한 왜곡과 그리고는 오직 감상의 소장(消長)만이 남아 있을|39| 따름일 것이다. 왜곡만이 소득일 터일 선양주의적인 상고 운동, 복고 운동 그리고는 회고적인 골동취미. 그러나 나는 왜 하필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일까.

≪사상과 현실≫ 제1부 가운데에서

지식인과 직업

아직도 한 사람의 개인의 직업에 있어 소명과 생계는 완전히 분열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며 직업의 윤리는 이 때문에 어디다 중점을 놓아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우리 직업계의 현상(現狀)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위에서 보아 온 현대 지식인의 직업 비극은 해소될 가망이 없다고 이렇게 볼 수밖에 없어 나는 이 의미에서 낙관보다도 비관이 먼저 앞섬을 막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네 지식인들은 금후도 상당한 기간을 동료 R군이 뼈가 저리도록 맛을 본 ‘호구와 이념의 이율배반’을 참아 갈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37|

다만 이 경우에 우리가 항상 명념(瞑念)해 두어야 할 것은 생계가 목적인 직업 외에, 생계를 단순한 수단으로 알고 그 일에 종사하는 그러한 직업도 있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Fuer-Beruf57)만이 아니라, Von-Beruf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지식인은 단순한 호구만이 아니라, 그가 지식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마땅히 다해야만 될 그러한 어떠한 문화적인 사명을 타고난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소위 문화적인 사명이라는 것이 직업의 다른 한 개의 중요한 요소인 ‘소명’,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에 해당할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소명으로서의 직업과 생계로서의 직업, 이 두 가지의 직업의 구별을 마음 속에 언제나 간직해 둔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우선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카이저의 것은 카이저에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라는 기독의 답변이 있는 것처럼, 소명은 소명대로, 생계는 생계대로, 이념은 이념대로 간직해 가면서 호구는 호구대로 길을 찾아야 될 것이 아닐까. 대단히 생기 없는 주장이 되고만 느낌이 있으나, 실상은 주장이라기보다도, 사회 체제가 근저적(根底的)으로 바꾸어지기 전에는 아직은 도리가 없으리라는 일종의 고백이다.

≪사상과 현실≫ 제1부 가운데에서

저자 약력
1909년 함북 성진에서 기독교 전도사의 아들로 태어남.

경성고등보통학교 1928년 졸업

경성제대 예과 1928년 입학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1931년 입학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1933년 3월 졸업(5회 졸업)

경성제대 연구실 조수 1933. 4. – 1934. 9.

평양 숭실전문대학 교수 1934. 9-1938. 3.

조선일보 사회부, 학예부 기자 1938. 4. 1 – 1940. 8. 10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전문대 폐교, 조선일보 폐간)

경성제대 철학과 대학원 입학 1940. 4.

중국으로 도피 1943년 이후 어느 시점

8.15 해방 당시 신경거류민단 대표로 활약

해방후 귀국 1945. 10.

임시정부 영수 환국 위원단 언론위원으로 활약

해방일보 발행인 및 주필 1946. 3. 25- 1946. 9. 6

3당 합동 사무장 1946. 8. 30

미군정이 9월 6일 현대일보사 수색 이후 도피하다가 월북(현대일보 무기 정간 당함)

강동정치학원 정치부 주임(부원장) 1948년 1월부터 –

빨치산 정치위원으로 남하 1949. 9.

태백산에서 죽음 1949. 11. 20 무렵

자세한 약력은 박치우 생애 연보를 보세요. 블로그에 있습니다.

읽어야 할 이유 한 마디
필독해야 할 ‘한국현대고전선’이다.
남과 북 모두에서 복권되어야 할 인물이다.
한국 현대 파시즘의 뿌리를 찾아 해명한 학자다.
≪사상과 현실≫은 해방공간을 조명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사료다.
≪사상과 현실≫은 한국 현대사가 담긴 한국현대철학사상서다.
≪사상과 현실≫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으면 머리에 힘이 생길 것이다.
현재를 잘 알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 과거의 기반 위에서 현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친일 잔재 청산이 얼어나야 할 영역으로 박치우는 사법부와 교육계를 거론하고 있다. 왜 그러했을까?

해방 공간에서 ‘인민 민주주의’론을 최초로 발화한 사상가이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헌상으로는 박치우의 문헌이 가장 빠른 것 같다.)

현재에도 매우 현실적이고 유효한 이론을 담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남북 통일 협상 과정에서 늘 ‘인민 민주주의’에 따라 주장한다고 하니 통일을 대비하여 박치우의 인민민주주의론을 읽어 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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