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사상과 현실』

경성제대 철학과에서 천재로 이름났던 박치우가 해방공간에서 현대일보 발행인으로서 활약하다가 펴낸 민족국가 수립 이론서이자 사회변혁 이론서 ‘사상과 현실’의 명문장을 소개한다.

『사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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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계와 일제 잔독

치안유지법이 아직도 유효라고 얼토당토않은 사람을 잡아가고 백 배의 폭리라서 가두었던 사람이 죄 될 것이 없다고 불기소 처분이 되며 호텔 감방으로 세도(勢道)를 과시하던 천하(天下) 주지(周知)의 모리장자(謀利長者)가 구형을 비웃는 듯이 무죄 언도를 받는 등 대체 요즘의 사법계는 어떻게 된 셈판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통념은 이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법을 다루는 관계 인사들이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있어 해방 때문에 갑자기 의심받을 정도로 양심의 질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고는 보고 싶지 않다.

특히 사법관계의 인사들은 높은 교양과 꿋꿋한 의사와 흔들릴 줄 모르는 양심의 소유자임이 절대의 조건이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이렇던 사람들이 8·15를 경계로 하여 갑자기 양심이 흐려졌다든지 인격이 저하되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다면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 아닐까? 그렇다. 확실히 통념과 법 운용과의 상극의 원인은 다른 데 있어야 할 것이다. 하다면 그 소위 정말 원인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일부 사법 관계 인사들의 머리 속에 아직도 깊이 박혀 있는 일제식 사고의 잔재|211|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것이다. 이전 같으면 당연히 잡아 가두어야 될 일인데, 이 같은 생각이 남아 있길래 치유법243) 위반자가 붙들려 가는 것이며, 이전 같으면 이처럼 유력한 인물을 그 정도의 일로써 죄(罪)줄 수는 없는데, 이런 관념이 아직도 어딘지 남아 있길래 가두었던 사람도 내어놓게 되는 것이며 구형이 잘못이고 무죄가 정당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은 실상인즉 중요한 것은 이 ‘이전(以前)’일 것이다. ‘이전’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제 시절’이 아니고 무엇이냐.

우리는 이 기회에 사법계 제군에게 충심으로 일대 반성을 촉하고 싶다. 제군 중에는 과연 그 유창하던 일어를, 그 서투른 조선어로 바꾸었다는 것만으로써 해방조선의 검사나 판사나 변호사로서 충분하다고나 생각하는244) 자는 없는가? 민주조선, 주권이 인민에게 있어야 할 인민의 나라 조선에서, 인민을 위해서 법을 운영할 자격은 그 정도로써 넉넉하다고나 생각하는 자는 과연 없는가? 8월 15일은 단순히 8월 14일의 다음 날에 불과한 연속체의 한 토막으로밖엔 볼 줄 모른 자는 없는가? 이 전연 절연(截然)히 구별되어야 할 역사의 분기점을 그렇게 간단히 넘겨서 좋은 것으로 망상하고 있는 자는 없는가? 더구나 새 세상에서는 마땅히 거꾸로 피고일 자가 아직도 태연히 논고나 판결을 내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자는 없는가? 있다면 단(單)히 당(當)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실로 조선을 위해서 불행도 이에서 더 큰 자는 없을 것이며, 또 이보다 더 두렵고 몸|212|서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대가 ‘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법계가 자진해서 자체 내의 독소를 소탕하지 못한다면 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오 또 이렇게만 되는 날이면 인민은 그때에는 일제히 일어서서 자기네 손으로 재판자를 재판에 부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일두조체(日頭朝體)245)의 암송구배(暗誦具輩)246)나, 조선이 누구의 나라인 줄도 모르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은 ‘철’을 모르는 타성분자들은 이 기회에 모름지기 조선제 대화숙(大和塾)247)에 들어가서 맹렬한 ‘미소기’248)를 받음으로써 정신을 버쩍 차려야 할 일이다. 사법계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체 내의 독소를 배제해야 할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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