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 비판적 지식인의 전형

1936년 신혼 초 사진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치우는 어떤 사람인가?

함경북도 성진에서 1909년 8월 22일 출생.

박치우는 일제 강점기 철학·철학사(오늘날 서양철학)를 전공한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5회 졸업생이며,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연구실 조수를 거쳐 숭실전문대학 교수 생활을 하다가 숭실전문대학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기 위해 자진 폐교함에 따라 교수직을 그만두고 조선일보 기자로서 생활하면서 사회평론가로서 활동하였다. 조선일보 폐간과 함께 기자 생활도 접었지만 폐간되기 직전에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고대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진학하였다. 이런 그의 학력과 경력 때문에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를 근대적인 아카데미 제도를 통해 철학을 배운 한국현대철학 제1세대에 속한 철학자라고 규정하기도 하며, 기자 생활을 한 저널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자 생활하는 가운데 사회평론가로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를 문인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규정 때문에 그는 한국 현대철학사, 한국 현대언론사, 한국 현대국문학사의 한 켠에 기입되어 있다.

박치우를 이상과 같이 규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일제 말기 그는 만주로 떠났다. 8·15 해방 당시 만주에서 <<신경거류민단>> 대표로서 동포들을 보호하는 일을 했다. 만주에서 귀국한 후 그는 <<해방일보>> 기자 자격으로 <<임시정부영수환국위원단>>에 언론위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조선공산당과 관련을 맺기 시작하였던 것 같고, 현실 참여적 지식인으로서 활약하는 가운데 1946년 3월 <<현대일보>> 발행인이 되어 언론활동에 종사하였다.  <현대일보>가 미군정에 의해 무기정간 당한 후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 정치부원장(교무주임)으로서 활동하다가 1949년 9월 빨치산 정치위원으로서 태백산으로 남하하여 그 해 11월 20일경 죽음을 당했다. 1946년 1월부터 월북하기 직전까지 쓴 그의 글과 그의 행적을 볼 때 그를 철학적 사상가 또는 실천적 사상가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사상과 현실>>을  읽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박치우의 삶과 그의 경력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이번에 판매하는 ≪사상과 현실≫의 <부록 1> <박치우의 삶과 죽음>(홍영두 씀)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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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철학 제1세대 철학자

일제 강점기 아카데미 제도를 통해 철학을 배운 한국 현대철학 제1세대에 속한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철학/철학사를 전공했는데, 오늘날 말로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한문에도 능통한 학자였다. 초기에 쓴 “돌아가는 맹자”라는 글이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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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상가

실천 개념을 이론과 행동의 통일로서 정립하고 이론과 사상의 변증법적 교호관계에 주목하여 이론과 사상의 특징을 해명하려한 철학적 사상가이다. 철학적 논증을 통해 이론과 사상의 특징을 해명하려 한 점이 돋보인다. 1930년대 실업 위기와 함께 지식인들이 식민지 파시즘에 순응해 갈 때 불안의 철학자로서의 하이데거 철학의 파시즘 경향을 비판하면서 지식인의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한 면모는 가히 철학적 사상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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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사상가

박치우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접선에 위치한실천적 사상가였음은 그가 발표한 글에서도 확인되지만 김남천이 남긴 <<사상과 현실>> 서평에 잘 나타나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카데미시앙이 저널리즘과 가두에 진출하여 현실과 싸우며 새 것을 위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박치우 씨가 처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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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박치우는 일제 강점기에 숭실전문대학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기 위해 숭실전문대학이 자신 폐교하자 <조선일보> 기자로서 생활하였다. 해방 공간에서 <현대일보> 발행인 및 주필로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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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국에 관한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 전체주의 비판에 관한 글 및 동아협동체론에 관한 비판적 글을 비롯하여 지식인의 소명을 진작시키는 글을 썼다. 그는 이런 글을 사회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고, 해방 공간에서는 각 단체의 중앙위원 등의 명의로 발표하였다. 그가 월북하기 전 1946년 발표한 다수의 글은 사회평론의 성격을 넘어 실천적인 사상가로서 발표한 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는 사회평론가로서 국문학사에서는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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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되어야 할 사상가

박치우는 남과 북 모두로부터 잊혀진 철학자가 되었다. 북에서는 박헌영 계열에 속한다고 해서 외면했고, 남에서는 빨치산 양성학교인 강동정치학원 부원장으로서 활동하였고 빨치산 정치위원으로 직접 남한에 내려와 죽었다고 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망각했기 때문이다.남한에서는 그를 심지어 ‘적의 괴수’라고 불렸다. 이제 박치우는 한반도의 분단을 막고 민족국가 건설에 헌신한 사상가로서 복권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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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

철학적 사상가

이론과 사상을 변증법적 교호관계 속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하려 한 철학자로서 한국현대철학 제1세대에 속한다

저널리스트

박치우는 1946년 초반에 <<현대일보>> 발행인 및 주필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한국 현대 언론사의 한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가 <<현대일보>>에 실은 글 ‘민주주의의 진짜와 가짜’를 소개해 본다.

실천적 사상가

박치우가 실천적 사상가였음은 그가 발표한 글에서도 확인되지만 김남천이 남긴 <<사상과 현실>> 서평에 잘 나타나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카데미시앙이 저널리즘과 가두에 진출하여 현실과 싸우며 새 것을 위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박치우 씨가 처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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