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사상과 현실』

경성제대 철학과에서 천재로 이름났던 박치우가 해방공간에서 현대일보 발행인으로서 활약하다가 펴낸 민족국가 수립 이론서이자 사회변혁 이론서 ‘사상과 현실’의 명문장을 소개한다.

지은이: 박치우
해설자: 홍영두
펴낸이: 홍영두
펴낸곳: 역사와철학
발행일: 2016년 4월 6일
ISBN 979-11-952801-6-2(05150) (EPUB)
등록번호: 제2014-000138호(201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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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 10,000원

쪽수: 1000페이지 이상

해방 공간 베스트셀러였던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1946)을 순 한글로 재편집하고 해제를 추가하여 한국 시민 누구나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저널리즘적 인문교양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씩은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호흡을 함께 하는 사회평론서로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적어도 한번씩은 읽어 놓으면 지금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인문교양 필독서입니다.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은 1946년 11월 20일 백양당 초판이 나오고 1946년 4월 10일 재판, 1948년 3판이 나올 정도로 해방 공간의 지식인들 사이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저서는 아카데믹한 학술서가 아니라 박치우가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통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시대 상황에 기반을 두고 조선 현실을 진단하고 부정적 현실을 비판하며 위기 극복의 방향을 논하면서 시대적 과제를 제안하고 해결을 모색한, 시사성이 매우 강한 글들의 모음집이다. [사상과 현실]은 일제 강점기 저널에 발표한 글을 모은 제1부, 1946년 1월부터 8월까지 사회단체에서 발표한 글 및 저널에 발표한 글을 모은 제2부, 박치우 본인이 주필(발행인)로서 활동했던 [현대일보]의 글을 모은 제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들의 주제는 모두 사회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사회평론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이들 글은 저널리즘적 방식으로 청년과 지식인을 대상으로 쓴 논술이지만, 한국의 ‘철학 1세대’에 속하는 철학적 사상가답게 치밀한 이론과 논리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바로 이 점도 오늘날의 우리가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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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치우 소개: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5회 졸업생으로서 한국철학 제1세대. 철학적 사상가. <현대일보> 주필 역임. 강동정치학원 교무부주임(부원장). 위기의 철학자, 실천 철학자, 반파시즘 철학자, 근로인민민주주의 철학자. 문단 비평가. 언론인. 국수주의적 파시즘 비판. 자세한 내용은 부록 3 생애 연보 참고하세요.

『사상과 현실』

입문 환영합니다

“철학은 우선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철학은 자기 자신만을 먹고 사는 그렇게 청백한 그렇게 초연한 학문이 아니라, 결국은 현실에 관한 하나의 사회적인 의식 즉 ‘이데올로기’의 하나다.”

– 11쪽 <철학의 당파성> 중에서 –

“지금까지의 조선의 현상(現狀)은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대로 ‘저널리즘’은 ‘저널리즘’대로 마치 두 사람의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너무나 몰교섭적인 벌어진 두 길을 걸어왔던 것만 같다. 하지만은 이래서 옳을까? 이래서도 좋을까? 두 개의 호(弧)는 기회를 다투어 서로가 되도록은 덮쳐야 하며 덮치는 가운데서 서로가 실상은 보다 풍성해지는 것이며 보다 믿음직한 성과가 기약될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저서에서 되도록은 이 양자의 괴리에서 오는 결함과 미흡의 보충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 본 것이다. “

– 서문에서 –

“생계가 직업의 중요한 요소임은 물론이나 그러나 생계가 직업의 유일의 요소는 아닐 것이다. 직업은 본래 그것을 의미할 독일어 Beruf가 Berufung 즉 신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이를테면 ‘소명(召命)’의 뜻을 가진 것이어서 그 자신에 있어 ‘천직(天職)’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천직이란 물을 것도 없이 특정의 개인이 거기에 종사할 가장 적절탁월한 천품(天稟)을 타고났고 또 그러하기 때문에 그 일에 종사함으로 말미암아 개인 자신에 있어서나 사태 자체에 있어서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직업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계와 소명, 이 두 가지 요소가 완전히 하나가 될 때에 한 개의 직업은 비로소 이상적 형태를 얻게 되는 것인데 불행히 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소명은 점차로 뒷전으로 밀려나가고 생계만이 홀로 남아 있게 된 관계로 직업은 단순한 한 개 호구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떨어지고만 것이다. R군의 비극은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학자로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사명이라고 믿으면서도 호구 때문에 그는 악기상을 직업으로 택하였다. 소명과 생계의 격렬한 싸움을 견디어 가면서 소명은 소명, 생계는 생계로서 따로 세워 보려던 것이 끝끝내 실패를 보고만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가 보더라도 R군의 악기상은 천직이 아니었다. ‘그것이 목적인 직업’이 아니라 ‘그것이 수단인 직업’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까. “

– 32-33쪽 <지식인과 직업> 중에서 –

“긍지(衿持)는 모름지기 버릴 때다. 과거에 대한 자랑보다도 미래를 향한 창조적인 결의를, 감정보다도 이지를, ‘센티멘트’보다도 ‘라티오’를 한 걸음 먼저 갖추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진실로 이것은 고문화(古文化)의 재음미(再吟味), 문화유산의 검택(檢擇)에 있어 언제나 먼저 냉정히 반성해야만 하는 가장 요긴한 문제인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반성이 앞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 소위 ‘재음미’와 ‘검택’이란 자(者)에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서는 단순한 회고적인 골동취미(骨董趣味)나 그렇지 않으면 소박한 선양주의(宣揚主義)적인 상고(尙古) 운동·복고 운동 이외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선양을 위한 파렴치한 왜곡과 그리고는 오직 감상의 소장(消長)만이 남아 있을 따름일 것이다. 왜곡만이 소득일 터일 선양주의적인 상고 운동, 복고 운동 그리고는 회고적인 골동취미. 그러나 나는 왜 하필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일까.”

38-39쪽 <고문화 재음미의 현대적 의의> 중에서

“청림교(靑林敎))의 불쾌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육만 명의 피해 기록을 낸 보천교(普天敎) 사건이 한동안 세상을 소란케 하더니 1년도 채 못 되어 다음에는 또 그 무시무시한 백백교(白白敎))의 대살육이다. 참으로 ‘사교화시대(邪敎禍時代)’인 감(感)조차 없지 않다. 더구나 그렇게 유치하고도 파렴치한 종교상업주의의 발호가 날이 가면 갈수록 줄어지기는 고사하고 이미 살해고(殺害高)의 그래프가 명시한 듯이 청림교, 보천교, 백백교, 이렇게 대를 거듭할수록 도리어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이니 한심한 일이다. 보통 같으면 날이 가면 갈수록 교육도 보급되며 ‘민도(民度)’도 높아져서 미신이라든지 사교의 폐단 같은 것은 당연히 줄어가야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사교사(邪敎史)는 웬 심인지 도리어 번영의 기록만을 더해가는 현상이니 이거야말로 괴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니만치 또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복잡한 사정이라기보다는 비밀이 숨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캐어 볼 작정이나 여하튼 이 같은 반갑지 않은 경향이 날로 더하여 가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보천교와 백백교, 이 양교(兩敎)의 손에서 지어진 두 개의 피해기록을 비교해 볼 때 더 한층 명료해지는 것이다. 보천교에 있어서는 비록 그것이 문명과 여론을 비웃는 듯이 몇 해를 두고 거의 공공연하게 사재편취(私財騙取) 혹세무민(惑世誣民) 등 갖은 악덕(惡德)을 쌓아 오기는 했어도 그래도 백백교에서 보는 것 같은 그러한 잔인무도한 살육까지는 아직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  45-46쪽 <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중에서 –

“초기 신흥 시민층은 구세력 중세적 봉건의 부자연한 억압으로부터 자신[시민인으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해방시키기 위하여서는 이 난업(難業)을 수행할 굳세고도 새로운 인간 ‘타잎’의 창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였던 것이니 이러한 인간 타잎의 창조라는 시민인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동원된 관념력(觀念力)이 곧 당시로 보면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의 그것이었던 것이며, 이러한 지식인의 운동의 총괄적 명명(命名)이 다름 아닌 ‘르네상스’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문예정치, 자연과학, 종교 등 온갖 문화 부문에 점차로 맹렬한 기세로 이 운동이 퍼져 든 것은 세인이 주지하는 바이나 이러한 각 부문이 언뜻 보면 상호 무관계한 듯이 보이면서도 시민적인 인간의 타잎의 창조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창조가 본래 그러한 것과 같이 ‘무(無)’에서 돌연히 튀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니 여기서 그들은 이러한 타잎의 선례를 역사에서, 자연 그들과 친한 역사에서 찾게 되었던 것이며 이 행운의 제비에 뽑힌 자가 곧 자유롭고 명랑한 저 고희랍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실상인즉 ‘희랍에로’라는 당시의 표어는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설사 ‘요순(堯舜)에로!’라든지 ‘단군(檀君)에로!’라고 해도 본질적 의미에서는 전연 무관계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참된 의도는 설사 무의식적이었다 치더라도 다만 중세적 체제를 파괴함에 충분한 ‘힘’을 가진 그러한 ‘타잎’의 인간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결국 신흥시민층의 본래적인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타잎’이면 그만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봄으로써만 우리는 시민 해방 운동으로서의 ‘르네상스’라는 한 개의 문화 운동을 그의 역사·사회|64|적 성격에서 완전히 파악할 수가 있음과 동시에 그들의 소위 ‘희랍에로!’라는 표어는 단순히 한 개의 ‘슬로건’에 불과한 전술적 의미 이외의 아무러한 의미도 가짐이 없다는 사실을 밝힐88)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대에로! 뒤에로!라고 외치면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손으로 지은 증기선과 화차(火車)에 몸을 실은 채 끝없이 앞으로 앞으로 달음질치고 있었던 것이다. 부흥은 복귀가 아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르네상스’를 ‘복귀로서의 발견’이란 의미에서 사용함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한다.”
 

– 63쪽 <현대철학과 ‘인간’ 문제 -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 중에서 –

“그러나 전환기에는 언제나 인간의 문제가 새로운 반성을 야기한다고는 하나 이러한 반성의 전부가 모조리 구인간(舊人間) ‘타잎’의 ‘질적 지양(止揚)’을 목적 삼는 그러한 근본적인 반성인 것은 아니|70|다. 질적 지양의 방법에 의한 근본적인 구제를 앞두고 거기에는 반드시 허다한 양적 개량(改良)의 시행(試行)이 선행(先行)하는 법이다. 이러한 ‘선행’의 한 개 기도가 곧 소위 실존철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등의 인간관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지만은 그러나 실존철학이 발견한 인간은 또한 그것이 본래 질적 지양의 방법에 의하여 찾은 인간이 아니었던 이상 새 시대의 인간은 못 된다는 것을 나는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실존철학은 단지 낡은 순수 인간에 새로운 옷[衣]을 입혔음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대체 왜 일부러 ‘새로운 옷’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일까?”

– 68쪽  <현대철학과 ‘인간’ 문제 -특히 ‘르네상스’와의 관련에서-> 중에서 –

“청림교(靑林敎))의 불쾌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육만 명의 피해 기록을 낸 보천교(普天敎) 사건이 한동안 세상을 소란케 하더니 1년도 채 못 되어 다음에는 또 그 무시무시한 백백교(白白敎))의 대살육이다. 참으로 ‘사교화시대(邪敎禍時代)’인 감(感)조차 없지 않다. 더구나 그렇게 유치하고도 파렴치한 종교상업주의의 발호가 날이 가면 갈수록 줄어지기는 고사하고 이미 살해고(殺害高)의 그래프가 명시한 듯이 청림교, 보천교, 백백교, 이렇게 대를 거듭할수록 도리어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이니 한심한 일이다. 보통 같으면 날이 가면 갈수록 교육도 보급되며 ‘민도(民度)’도 높아져서 미신이라든지 사교의 폐단 같은 것은 당연히 줄어가야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사교사(邪敎史)는 웬 심인지 도리어 번영의 기록만을 더해가는 현상이니 이거야말로 괴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니만치 또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복잡한 사정이라기보다는 비밀이 숨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캐어 볼 작정이나 여하튼 이 같은 반갑지 않은 경향이 날로 더하여 가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보천교와 백백교, 이 양교(兩敎)의 손에서 지어진 두 개의 피해기록을 비교해 볼 때 더 한층 명료해지는 것이다. 보천교에 있어서는 비록 그것이 문명과 여론을 비웃는 듯이 몇 해를 두고 거의 공공연하게 사재편취(私財騙取) 혹세무민(惑世誣民) 등 갖은 악덕(惡德)을 쌓아 오기는 했어도 그래도 백백교에서 보는 것 같은 그러한 잔인무도한 살육까지는 아직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  45-46쪽 <사교의 발호와 종교상업주의> 중에서 –

“해답의 범람이 여기서도 화(禍)였던 것이다. 이 같은 범람은 그러나 ‘헤로도토스’ 이래로 우리는 이미 너무나 다수|76|인 학자들의 세대관에서 충분 이상의 경험에 시달려 온 터이기는 하지만은, 신분 이론과 함께 최근에 와서의 갑작스러운 세대 이론의 범람에는 새삼스러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혹은 정세의 역전에 기인된 계급이론 진영의 퇴세(退勢)를 엿보았었음일까? 까놓고 보면 계급 대신에 세대라는 그럴 법한 것을 내세우고 어물어물 넘겨 버리려는 심보에서임이 분명하지만은 어떻든 역사나 사회에 관한 이론은 더 말할 것 없고 문학 음악 등의 예술 부문을 위시해서 교육이론, 특히 청년론을 위주로 한 교육이론에 이르기까지 세대주의의 제 이론이 맹렬한 기세로 퍼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75쪽 <세대사관 비판> 중에서 –

 

“그렇지만은 우리는 여기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세대가 역사 성립에 빼지 못할 토대가 된다고 해서, 곧 역사를 세대 본위의 입장에서 재단해도 좋다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나 인간은 세대 없이는 연속될 수 없으니 세대는 모름지기 역사의 중심에 앉아야만 된다는 말은, 동일한 논법으로, 역사는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나 인간은 또한 ‘공기’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니까 공기를 역사의 중심에다 모셔야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넌센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생사(生死), 따라서 세대의 교체라는 생물학적인 ‘리듬’이 역사의 토대 가 된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역사가 도출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만하임’의 말과 같이 “durch etwas hundiert sein”115)이란 말은 “aus ihm ableitbar sein”116)이라든가 “in ihm enthalten sein”117)이라는 말과는 다른 것이다.(주5) 세대사관은 진실로 이 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며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넌센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혼동-치명적 혼동-은 그들의 시간관, 계급관에 이르러서 한결 더 노골화되는 것이지만…….”

 

115) 원문에는 hundiert로 되어 있는데, fundiert의 오자이다. 이 구절을 번역하면 “어떤 것이 토대가 되다”나 “어떤 것에 의해 기초지워져 있다”로 번역할 수 있다.

116) “그것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117) “그것 속에 포함되어 있다.”

118) 박치우는 핀델이라고 표기했는데, 그 당시는 r과 l을 동일하게 발음한 것 같다. 그래서 편집자는 핀델을 핀더로 고쳤음. 

– 98쪽 <세대사관 비판> 중에서 –

영 제국(英帝國)에서의 인도인이나 미국에서의 흑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무산근로대중의 이익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돈을 중심으로 운전되고 있는, 실질적으로는 ‘금(金)’주주의에 불과한 민주주의도 있는 것이며 한편 또 이것들과는 전연 반대로 도리어 노동자와 농민만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는 노동자 농민 독재의 소련의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있는 것이다. 한데 역사적으로 주체와 형식에 있어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로 구별되는 것이지만은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조선 현황과 대비해서 제기되고 있는 소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문제이|106|다. 이것을 특히 위에서 이야기해 온 전체주의와 겨누어 가면서 그 기본논리를 해명해 보기로 하자.

 

 

(중략)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이 같은 박론(駁論)을 물리치기 위해서 원칙적으로 인간의 평등, 인간의 1대1(一對一)을 내세우게 되는 것이며 또 이것을 그럴 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철학에다 원병(援兵)을 청하게 된다. 전체주의가 그리했듯이 민주주의 역(亦) 철학에서 여러 가지 이론적 무기를 빌려 오는 것이다. 이 빌려 오는 무기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 [논리라는 점에서만 한(限)하고 본다면] 전체주의가 유기체설을 채용하는 데 대해서 민주주의는 형식논리를 채용하는 것이다. 하다면 형식논리는 어떤 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의 역할을 맡아 볼 수가 있으며 또 맡아 보고 있는가?

(중략)

 

형식논리는 한 말로 말하면 현실존재의 논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떠난 일종의 비감각적|108|인 일반자, 즉 이념존재의 논리다. 이 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사유 형식의 학으로서의 형식논리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리는 자신을 사유의 형식의 학으로서 성립시키기 위한 기본 요구로서 모순율과 동일률이라는 엄격한 공리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

 

(중략)

 

한데 이 같은 존재로서의 ‘개인’은 그것이 이처럼 최종의 단위인 동시에 궁극 존재로서의 독자자라면 그것은 자신의 원인을 자기 이외(以外)에서 가져올 수는 없을 것이며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의 원인을 타자에서 빌려 오는 존재자는 참된 의미의 독자자, 궁극 존재일 수는 없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원인을 자기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존재 즉 자인자(自因者)134)일 것이며 ‘타유자(他由者)’135)가 아니라 ‘자유자(自由者)’136)일 수밖에도 없는 것이어서 사전에 피차간의 충분한 자발적인 응낙이 없는 한 여하한 타자에 의해서도 제약 구속을 받지 않는 그러한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면 아니 되게 된다. 진실로 시민적 자유주의의 배후에는 이 같은 형식논리적인 ‘개인’의 존재가 불가결의 것으로서 엄존해 있는 것이다.

 

(중략)

 

한편 또 민주주의의 형식논리는 과연 어떨까? 충분할까? 완전|111|할까? 간단히 몇 마디 적는다면, 첫째로 형식논리라는 것은 원래가 현실존재의 논리가 아니라 이념존재의 논리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장 현실적인 존재인 인간의 문제에다 이식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은 될는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데아’138)나 단자[모나드]139)나 ‘아톰’이나 ‘인디비두움’은 결단코 아니다. 인종이나 민족이나 계급과는 아무러한 상관도 없는 무색투명한 한 알 한 알의 개인이라는 것은 실지에 있어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개인이 있다는 것은 한 개의 추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사유의 형식의 학으로서는 형식논리학은 훌륭하다. 그러나 형식논리가 만약에 인간의 행동 내지 사회적 실천의 문제 더구나 역사의 문제에 용훼(容喙)140)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월경141)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실존재로서의 인간의 행동과 역사를 옳게 취급할 수 있는 논리는 현실존재의 논리로서의 변증법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역사가, 아니 민주주의의 역사부터가 벌써 이 말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영국의 민주주의는 절대다수인 3억의 인도인에게는 1대1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미국의 1대1은 아직도 흑인에까지는|112|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단 흑인만이 아니라 같은 백인이라 해도 참된 1대1은 벌써 바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돈의 1대1은 있어도 사람의 1대1은 없다. 주식회사는 여기에 대한 가장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주주의 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의 수에 의해서 주식회사는 운영된다.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궁국에 가서는 이 같은 주식회사와 다를 배 없다. 민주주의는 이제는 벌써 민주주의로부터 ‘금(金)’주주의로 삐뚤어져 가고 만 것이다. 만약에 여기에 초기 민주주의가 주장한 저 형식논리인 제 요구를 그대로 실천한다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당장에 파산을 당하고 말게 될 것은 명약관화다. 인간동등, 1대1이 실현되었다가는 큰 일일 것이다. 일찍이 시민은 다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은, 부르주아지는 벌써 다수자가 아니라 비만한 소수자로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소수 봉건자를 타도하고 세계사의 빛나는 무대 위에 올라섰던 시민계급은 지금은 그 자신이 소수자로 전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다수자에 의한 결정적인 위협 앞에 떨고 있지 않으면 아니 되게끔 되어 버린 것이다. 진실로 이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변증법이 있을 뿐이며 또 이 과정 자체가 곧 변증법이기도 한 것이다. 섣불리 1대1(一對一)에서 1대1은 시민을 위하는 것으로부터 시민을 망치는 자기모순적인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시민적 1대1’에 대한 변증법적 해명인 것이며 이 같은 과정 그것이 또한 기실(其實)142)은 시민적 1대1의 변증법이기도 한 것이다.

 

– 제2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신생 조선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중에서

형식논리적 1대1은, 형식논리적 공평은 그러므로 공평의 ‘픽션’155)[허구]일 수는 있어도 공평의 현실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공평이 아니라, 공평의 ‘픽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공평, 현실로서의 공평, 현실적인 1대1은 그러나 어디서 구해야 할 것일까?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사실이 아니냐? 1대1은 말뿐이고 어디 진정한 1대1이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현실적인 공평이란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된다든지 또 있을 수 없다는 것의 이유는 못 된다. 있을 수만 있다면 있어서 무방한 것이다. 하다면 그것은 어떠한 공평이어야만 될 것일까? 그것은 어떤 공평일까? 능력에 의해서|128| 노동하며 노동에 의해서 분배하는 일, 이것이 ‘위선은’156) 그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능력에 의해서 노동을 시켜 주고 또 그 노동에 의해서 분배를 시켜 주는 데 불평이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불평을 중얼거릴 인간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있다면 그것은 욕심쟁이다. 욕심쟁이에게까지 만족을 줄 공평의 ‘스톡’은 없다. 노동에 의한 생활재의 생산이 없어도 인류는 넉넉히 살아갈 수만 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하는 수 없다. 따라서 이렇게 되는 때의 1대1만이 ‘픽션’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1대1이며 비로소 명실상부한 1대1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사태가 벌써 형식논리의 영역을 넘어가면서 있을 때에만157) 가능한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 점은 특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야만, 형식논리를 기초 원리로 하는 시민사회가 거꾸러질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그러한 공평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는 적어도 능력에 의해서 노동을 시켜 주며 노동에 의해서만 분배를 하여 주는 그러한 사회는 아닌 때문이다.

– <1대1과 형식논리> 중에서 –

민족이 문화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민족을 위해서 있다는 것은 한 개의 민족이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순시(瞬時)도 잊어서는 아니 될 간명중대한 진리다. 높고도 아무리 아름다운 문화라 해도 그것이 한 민족의 세계사적 발전에 도움이 못 되고 도리어 이것을 저지(沮止)161)하는 질곡으로 화하게 되고 마는 한 문화는 남아도 민족은 망한다. 비단 ‘마야’나 ‘잉카’나 ‘쿠메르’의 경우를 운위할 것이 아니라 문화사 상으로 본다면 확실히 선진임에도 불구하고 근대문화 좀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 과학문명의 섭취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보잘것없는 경지에 떨어지고만 아세아의 제(諸) 민족의 오늘이 무엇보다도 웅변적인 좋은 예다.

이 같은 전락을 자위하는 수단으로 동양문화는 정신문화고 서양문화는 물질문명 기계문명이니 하면서 억지로 문화와 문명을 구별해 가면서까지 변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아 기만이다.|132| 여기 다시 박차를 가한 것이 일제(日帝)162)의 음흉한 인종관일 것이다. 우리를 때려 부수고 우리를 약탈한 도구로 사용된 그들의 비행기나 기관총은 동양의 ‘정신문화’가 아니라, 기실은 서양 물질문명, 아니 정확히는 자본주의 과학문명에서 배워온 것 중의 하나인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하거늘 그들은 의례히 문화라면 동양문화니, 아니 백인문명이니, 황인문화니 하며 문화가 마치 인종의 차이 때문으로 그처럼 차이 현격이 생긴 듯이나 떠든다는 것은 확실히 한 개의 음모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쳐 감으로써 한편으로는 그 소위 서양문명이란 자를 슬금슬금 수입하다가는 저들로서는 절실히 필요한 압박과 침략의 도구, 가령 소총·기관총·군함·비행기 등속은 자꾸만 만들어 가는 한편, 우리나 또는 그들 자신의 피압박 대중에게는 소리를 높여서 신도니 황도니 팔굉일우니 하는, 근대정신과는 얼토당토않은 원초적·샤만적·국수당적인 미신이나 그런 것들을 지켜 줄 것을 강요해 온 것이다. 또 알고 보면 봉건적인 굴복과 인종(忍從)밖에는 더 안 되는 봉건 도덕적인 노예적인 것을 이것이야말로 서양인에게는 절대로 없는 동양 고유의 미풍이라고 해 가면서 ‘동양 도덕’, ‘동양 정신’이라는 미명하에 극력 칭송·권장·강요함으로써 압제에 의한 예속의 영원화를 기도해 왔던 것이다. 이 같은 음흉한 기만은 비단 우리네 조선인에게만 한했던 것은 아니고 중국 침략·태국 침략·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침략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수행되었었다는 것은 지금은 한 개의 공연한 비밀이지만은 그들 일본인 자체에 대해서도 지배 특권 전제 제도의 확보를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어 비교적 교양이 낮고 마음씨가|133| 단순한 무수한 피압박 근로대중들은 지배자의 이 같은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가서 누구를 위해서인 줄도 알 수 없는 침략 전쟁에 귀중한 땀과 피와 목숨까지도 알뜰히 제물로서 바쳐 온 것이다. 제국주의라 아무리 자국민, 동포라 해도 압제와 착취에 들어서서는 별수가 없는 것이다. 신생 조선도 자칫하다가는 이 일제(日帝)가 밟던 전철을 되풀이할 위험이 결단코 없지 않은 것이다. 세계사의 면에서 보지를 않고 그저 덮어놓고 이것이야말로 ‘동양적’, 이것이야말로 ‘조선적’ 운운만 하다가는 첫째 세계사적 수준에서 영영 뒤떨어져 버릴 위험성이 다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완미한 국수주의적인 언동이 전제주의자나 신파쇼분자들에게 이용되는 날이면 봉건적인 것을 일소(一掃)하려는 민주 조선의 사회 해방은 영영 바랄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대저 전제주의자, 더구나 조건이 나쁘기로는 이미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경우에서 충분히 보듯이 개명 (開明)한 전제주의자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가령 무기를 비롯한 물질적인 면에서는 되도록 근대를 확보하되 정신적인 면에서만은 어디까지든지 야만·미개·원시에다 인민을 얽매여 두려는 것이 인민 기만에 있어서의 그들의 상투적인 전략인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이 결국에 가서는 실패하고야 만다는 것은 오늘 이들 파시스트들의 말로가 무엇보다도 그 증거거니와 무릇 문명과 미개, 현대와 원시가 무리 없이 동서(同棲)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 <민족과 문화> 중에서 –

봉건사회에 비한다면 시민사회는 확실히 신분적인 격조를 광범하게 타파해버린 사회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시민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유일의 저울인 계급제 사회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신분은 타파되었으나 유산과 무산이라는 새로운 날카로운 범주로 분열된 사회가 시민사회다. 문화공동체의 넓이는 확실히 확대된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그만큼 확대되었기 때문에 민족국가가 탄생된 것이지만] 귀족 대신에 새로 등장해서 중심을 차지하고 앉은 자는 실상은 시민이며 일찍이 시민도 그 일원이었던 하층민이 아|144|직도 다대수175)를 점령하고 있고 노동자와 농민 등 무산대중은 경제적 구속 때문으로 해서 이 새로운 문화공동체에 동격적인 일원으로서 참가할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이 이러한 한 시민사회적 국민문화공동체 역(亦) 아직도 몹시 불완전한 채로 남아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으며 이러한 한 문화공동체는 이질적인 호상 분열된 두 개의 문화공동체의 형태로 갈라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공동체와 민족의 우리가 위에서 누차 지적해 온 불가분적 관계에 상도한다면 이 같은 상태를 그대로 남겨둔 채로 참된 의미의 민족의 통일을 바란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기대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그 의미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조선의 경우는 한결 더 복잡하고 한결 더 난사(難事)일 것은 현재 조선이 처해 있는 역사적 단계로 보아서 오히려 당연 이상의 당연일 것이다. 자본세력은 고사하고 봉건세력이 아직도 뿌리를 그대로 박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조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통일 조선의 민족문화 건설이라는 이 중차대한 책임을 떠맡고 나와 선 문화종사자들의 앞길에는 진실로 상상 이상의 고난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단코 용이한 과제가 아니며 그러나 기필코 수행해야만 될 그러한 과제일 것이다. 민족문화를 건설하려면 전 민족을 포옹할 수 있는 문화공동체를, 그러한 문화공동체만을 만들어 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공동체가 완성될 때에만 조선인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인종이나|145| 단순히 정치학적 명칭인 국민의 이름에서가 아니라 참으로 비로소 민족으로서의 이름 밑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상전과 노예의 관계에서는 상전의식이나 노예의식은 있을 수 있어도 참된 순수무구한 ‘동포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계급적으로 엄격한 문화적 국경을 고수하면서 참된 민족적 공감을 일거에 무조건적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너무나177) 낙천적인 너무나 안이한 주문이 아니면 아니 될 것이다.

–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  중에서 –

 

신비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어서 파시즘이 등을 대고 있는 논리 역시 언제나 일종의 이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라는 것을 우리는 명기(銘記)할 필요가 있다. ‘피’나 ‘흙’의 논리야말로 그 가장 현저한 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동포라면 반갑고 고국이라면 그리운가. 동포이기 때문에 반갑고 고국이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그 뿐이다. 이 이상 설명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이것들은 확실히 보통논리, 합리적인 논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인 요소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치스 철학이 언제나 ‘피’와 ‘흙’의 원리를 내세우게 되는 것은 이렇게 보아 오면 결코 이유 없는 일은 아니다. 이지(理知)는 여기서는 절대로 금물이다. 단도직입으로 감정에, 민족감정에 호소하고 마는 것이 언제나 그들의 상투수단이다. 모든 종류의 국수주의가 자칫하면 파시즘으로 넘어가기 쉬운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다. 내 것이면 덮어놓고 사랑하며 제일(第一)인 국수주의는 이성의 개재를 불허(不許)하는 일종의 감상주의임에 틀림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피’와 ‘흙’을 돌보지 않는 여하(如何)한|154| 국수주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수주의로부터 발족하지 않는 파시즘이라곤 없는 것이다. 국수주의가 권력에의 의욕과 결부되는 순간 그것은 횡포무쌍한 파시즘으로 전화되기가 십중팔구인 것이다. 덮어놓고 내 것이 제일, 우리 민족이, 우리 문화가 제일이라는 신비주의적 국수주의 사상이 가령 제국주의와 같은 것과 손을 마주 잡게만 된다면 그것은 내(內)로는 테러와 쿠데타를 일으키고야 말 것이며 외(外)로는 만주를, 시베리아를! 이렇게 조선판 천손(天孫) 사상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재현시키고야 말게 될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하다면 경우에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더 말할 것 없이 모든 비(非)독일적인 문화를 구축(驅逐)하고 그 자리에 순수 순결한 독일적인 민족문화를 육성한다면 나치 독일의 문화정책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느냐가 무엇보다도 증거다. 문제는 오직 조선에도 과연 이 같은 파시즘의 위험이 있느냐 어떠냐에 달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간단하다.

(중략)

후진사회일수록 파쇼적 폭력정치가 지배적인 것은 아무도 부정 못 할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민주주의적 훈련’이 부족한 탓이다. 하물며 아직도 봉건유제의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겨우 기형적으로밖에 발달 못 된 조선,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라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아무러한 이렇다 할 정치적 훈련의 기회조차 가져 보지 못한 조선이 아니냐. 파시즘의 유혹에 대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용의와 준비가 있을 것인가. 진실로 이렇게 보아 오면 조선이야말로 파쇼의 번식을 위하여서는 절호의 토양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이지(理知)의 근대화도, 감정의 민주주의적 훈련도 아무것도 되어 있지를 않다. 무엇을 가지고서 그 휘황찬란한 파쇼의 유혹에서 자기를 지켜 낼 도리가 있을 것인가.

미소 양군(美蘇兩軍)만 없다면 통일은 염려 없다는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왜냐하면 물론 통일은 될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의 그 소위 ‘통일’이란 십중팔구는 민주주의적 통일의 반대물인 파쇼적인 통일, 비민주주의적인 통일일 것은 명약관화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감시 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공부는 뒷전으로 밀고 테러와 전제가 여하(如何)히 계속되어 부끄러울 줄|156| 모르는 조선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의 해방 지역에는 독립은 상조(尙早)라는 의견이 아직도 미국 정계의 일부에는 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지만은 진실로 슬픈 일이나 이유 없는 일은 아닐 상싶다. 왜냐하면 식민지 투성인 아시아에서 그 동안 그대로 독립국가로서 겨우 버티어 내려온 나라라고는 일본, 중국, 태국의 삼국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세 나라의 국정(國情)은 과연 어떠했을까. 모두가 파쇼가 아니면 독재국가가 아니었던가.

 

–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중에서 –

더구나 조선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사태는 한결 더 간단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노선만 따라만 간다면 어떤|159| 주의의 민주주의든 간에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결국은 ‘근로민주민족전선’이라고나 불릴 수 있을 그러한 유일 최종의 일로(一路)에 합치고야 말 것은 필연적인 순서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1대1만 보증된다면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다는 민주주의 부동(不動)의 원칙에 비추어194) 조선의 민주주의가 이러한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은 이(理)의 당연한 자(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자는 그가 진실로 양심으로부터 민주주의자고자 하는 한(限) 안심(安心)코 반(反)파쇼 깃발 아래로 모일 수 있으며 또 모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파시스트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이들 근로인민이며 근로인의 단결이다. 근로자의 분열 없이 파시즘이 성공한 예라고는 없다. 문학자는 그러므로 이들 속에 들어가서 이들과 굳게 단결될 때에만 문화 조선을 파쇼적 협위에서 구출할 수 있을 가장 바르고 넓은 승리의 대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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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주의의 파시즘화를 경계하자!

▲비합리성의 원리를 분쇄하자!

▲합리성의 원리로써 무장을 하자!

▲합리주의 사상 진영과 손을 잡자!

▲감정을 민주주의적으로 훈련하자!

▲민족 신비주의의 유혹에 속지 말자! |160|

▲민주주의 계몽운동에 적극 참가하자!

▲국제 파시즘의 뿌리를 뽑자!

▲반파쇼 깃발 밑으로 모든 민주주의자는 단결하자!

 

–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중에서 –

한데 아무리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도 이것은 곧 학자의 자유의 무제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진리를 위해서 탐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국가의 이익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국가의 이름으로 형벌을 받아 온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이익에 반대되는 경우에는 민족의 이름으로, 계급의 이익에 상반(相反)되는 경우에는 계급의 이름으로, 문책된다는 것을 학자는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침략의 선구로서 파견된 자원조사대원은 학술적 연구, 따라서 진리의 탐구를 위해서 온 것에 불과하다는 진변(陳辯)만으로 토인(土人)의 학살로부터 모면될 수는 도저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眞)은 진이고, 선(善)은 선이다. 한 개의 진(眞)이 동시에 국가의 선(善)이 될 경우에만, 다시 말하면 한 개의 진리가 동시에 그 국가를 ‘위한 진리’일 수 있는 경우에만 국|170|가는 학자를 존중우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개의 진리가 동시에 민족의 선이 될 수 있는 경우에만 그 학자와 민족은 동시에 행복일 수 있는 것이며 한 개의 진리가 동시에 한 개의 계급의 선일 수 있는 경우에만 양자는 행복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형벌 대신 표창이 비로소 보장되는 것이다. 학자는 그러므로 진리의 탐구를 통해서뿐 국가, 민족, 계급에 봉사할 수 있다 해도 진리의 탐구라는 것이 곧 학자 자신의 일신 상의 행복을 반드시 약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학자가 언제나 미리부터 알아 두어야 할 슬픈 상식이 아니면 아니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한 개의 비극이 아니면 아닐 것이나 그러나 학자는 적어도 그가 학자인 한 자신을 언제나 진리만을 위하여 진리만 찾아내면 그만이며 누가 이것을 채택(採擇)해 주든 또 그것 때문에 어떤 뜻 않던 화가 닥쳐오더라도 개의(介意)할 것이 없다는 거연(巨然)한205) 태도와 용의(用意)206)와 결의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용의와 결의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용의와 결의에는 어느 의미에서는 순교자의 그것과 흡사한 비장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은 이것이 없이는 학자는 그가 적어도 진리탐구라는 본래적인 사명의 완수를 기(期)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 <연구와 발표의 자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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